이석(b. 1988)은 사진, 미디어,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의 예술 매체를 활용해 익숙한 풍경을 낯선 장면으로 포착함으로써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굳어 있던 사고의 틀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작가는 대상의 표면이나 건축물 파사드에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자연 위에 실험하며,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성에 대해 사유하고 급변하는 현대 사회 안에서 상실되어가는 실재적 감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석, 〈FRAME2021-SON〉, 2021, 비디오 설치, 4K, LG OLED 디스플레이 장치, 98.9x171.9cm © 이석

이석은 오랫동안 자연, 환경, 기후에 관한 주제에 천착해 왔다. 이러한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작가는 무한성(Infinity)을 근원으로 하는 자연이라는 현상에 테두리(Frame)라는 유한한 한계를 설정해, 자연과 인간, 예술과 시대, 환경이 상충하며 교차하는 순간에 주목해 왔다.


이석, 〈FRAME2021-SAM〉, 2021, 비디오 설치, 4K, LG OLED 디스플레이 장치, 107.1x61.8cm © 이석

이석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개념이자 조형 요소인 ‘테두리’는 인공적 요소인 빛과 디지털 기술이 자연과 만나며 형성된다. 3D 매핑 테크닉과 프로젝션 기술로 출력되는 인공 빛은 산이나 바위, 나무 등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며, 정교하게 가공된 초현실적 재현의 창으로 현실과 비현실의 영역을 침투한다.
 
2018년부터 시작된 이석의 ‘FRAME’ 시리즈는 그의 대표적인 미디어 작업으로, 자연에 인공 조명을 설치해 장면을 포착한다. 이 시리즈는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려는 시도로, 자연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신중하게 인공적인 요소를 개입한다.


이석, 〈FRAME2021-CHT〉, 2021, 비디오 설치, 4K, LG OLED 디스플레이 장치, 97.6x171.2cm © 이석

일종의 대지미술로도 볼 수 있는 그의 미디어 설치 작업은,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작업의 주요 매체인 빛은 비물질적 요소로 대상에 일시적으로 배치되었다가 곧 사라진다. 나아가, 이석은 이 작업에 태양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작가가 독립적으로 획득하고 소비하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자급자족적인 예술 실천을 달성한다.
 
예술과 환경의 결합을 도모하는 이석의 ‘FRAME’ 시리즈는 자연과의 조화와 예술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오늘날 환경 문제와 인간과 자연의 연결성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이석, 〈ENTER〉, 2022, 프로젝션 설치, 유리, 3분 © 구하우스 뮤지엄

한편, 2022년 작품 〈ENTER〉에서 작가는 복도처럼 좁은 입구에 영상과 함께 웅장한 사운드를 플레이하며, 코로나 시대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앞당겨진 ‘초연결’의 시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하였다.
 
이석은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으나 유일하게 감각의 영역은 획득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인간조차 원리를 모르기에 가르칠 수 없다고 보았다.
 
작가는 이것이 없는 인공지능이 세계를 지배할 때 생길 폐해를 두려워하며, 그 감정을 “내가 그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문은 아주 좁다”고 표현한다. 


이석, 〈ENTER〉, 2022, 프로젝션 설치, 유리, 3분 © 구하우스 뮤지엄

이를 반영하듯, 〈ENTER〉를 만나러 가는 길목에 위치한 복도 같이 좁은 입구는 ‘출입문’을 향한 통로가 되고, 끝에서 마주하는 높고 좁은 화면에서는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혼돈스러운 영상이 상영된다.
 
화면 속에서 푸른 구체는 직사각형으로, 하얀 직사각형과 푸르고 긴 직육면체로, 혹은 무언가 폭파하는 이미지들로 전환되며, 새로운 문명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보여준다.


《FRAME: 대지의 모든 테두리》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호화, 2024). 사진: 정지후. © 이석

그리고 2024년 아트스페이스 호화에서 열린 이석의 개인전 《FRAME: 대지의 모든 테두리》는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실험을 더욱 확장하여 선보였다.
 
그의 작업에서 프레임을 통해 만들어진 자연 안팎의 시각적 경계는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자연과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맞이하는 혼란스러운 감각과 실재의 간극을 이질적으로 가시화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관람하는 주체의 시점에서 작품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한 의도적인 배치는 과거 우리 기억 속의 자연에 관한 공감각적 인상을 전복시키며,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역전된 구도를 대입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이석, 〈Into the Frame〉, 2024, LG TOLED 투명 디스플레이 장치, 레이저 프로젝터, 모션 그래픽(3분), 전자음악 사운드, 가변 설치. 사진: 정지후. © 이석

이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작품 〈Into the Frame〉(2024)은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 시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자연에 대한 감각의 상실을 제3의 공간과 화면 속에 구현했다.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끊임없는 선들의 추상적 환영은 단순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스펙타클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오늘날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존재성을 상기시키고, 그 존재의 본질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색다른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석, 〈Bruised Flame〉, 2024, LG 프로빔 레이저 3대, 장작 위 프로젝션, 모노포닉 사운드, 가변 설치. 사진: 정지후. © 이석

이와 함께 선보인 또 다른 미디어 설치 작업인 〈Bruised Flame〉(2024)은 불길에 타오르는 장작의 모습에서 떠오른 원초적인 감각을 재료 삼아 제작되었다. 이석은 힘차게 위로 뻗어 나갔다가 사그라짐을 반복하는 불의 형상을 프로젝션 기술로 재현함으로써, 소멸과 생성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이고 공존적인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석, 〈무늬〉, 2025, 다채널 미디어 설치(모니터 11대, 단일 디스플레이로 동기화), 7680x3240 px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2분 40초. © 이석

이석은 이와 같이 디지털 기술을 매개로 자연과 인간,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온 동시에 몸의 움직임과 패턴을 빛과 소리로 해석해 보는 작업 또한 진행해 왔다.
 
예를 들어, 2025년 국가유산청이 주최한 단체전 《헤리티지: 더 퓨처 판타지》에 출품한 작품 〈무늬〉(2025)에서 이석은 태권도의 ‘구령 품새’ 움직임과 패턴을 최소한의 빛으로 구현하고 사운드에 기합소리를 녹여냈다.


이석, 〈무늬〉, 2025, 다채널 미디어 설치(모니터 11대, 단일 디스플레이로 동기화), 7680x3240 px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2분 40초. © 이석

총 11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미디어 설치 작업 〈무늬〉에서 빛으로 번역된 태권도 품새의 동작들은 잠깐의 정지 속에서 형태를 형성한다. 이때 움직임은 사라지지만, 그 결은 그대로 남아 하나의 모티프로 응집된다.
 
사운드는 녹음된 기합 소리를 겹겹이 쌓아, 작업의 물리적 리듬을 반향하는 섬세한 음향 텍스처로 변환된다. 이와 맞물려 움직이는 화면 속의 패턴들은 빛으로 짜인 거대한 직물이 되어, 절제된 몸짓과 절묘한 색감, 그리고 빈 공간 속에서 피어나는 고요한 생동감을 드러낸다.


이석, 〈FRAME〉, 2024 © 이석

이렇듯 이석은 ‘빛’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연과 인간, 기술과 인간, 예술과 기술 등을 연결 지어 사유하고, 시각뿐 아니라 청각적 요소를 더한 다감각적인 구성으로 작업을 제시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이 세계 내의 유기적인 관계성에 대해 감각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즉, 그의 작업은 필연적이자 역설적으로 상충되는 개념들 즉, 기술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예술의 영역을 맞닿아 보도록 함으로써,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되는, 그러나 무감각해진 본질적인 감각들을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환경적, 사회적 의제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석, 〈FRAME2025〉, 2025 © 이석

"변함없는 풍경이 만든 익숙함은 결국 멈춰 있는 이미지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익숙한 관성 속에서 작은 틈을 찾습니다. 익숙한 장면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새로움은 비로소 깨어납니다. 나는 바로 그 전환의 순간에 집중합니다.
 
같은 사물이라도 빛에 따라 전혀 다른 정서를 드러냅니다. 나는 그 빛을 통해 풍경 위에 ‘FRAME’이라는 나만의 세계를 세우고 무감각해진 시선 너머에서 낯선 장면을 포착합니다. 내게 빛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이석, ‘Framing the Unfamiliar’ 프로젝트 영상 중)


작가 이석 © 이석

이석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2015년 이탈리아 로마 국립미술관에서 초청한 미디어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예술뿐만 아니라 국제기구 캠페인, 공연, 패션, 공공 영역 등 다양한 범주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FRAME: 대지의 모든 테두리》(아트스페이스 호화, 서울, 2024) 등이 있으며, 《 헤리티지: 더 퓨처 판타지》(DDP, 서울, 2025), 《초월: 삶》(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 부에노스 아이레스, 2024), 《Hi, Light – 빛, 예술을 만났을 때》(구하우스 뮤지엄, 양평,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또한 이석은 조던, 나이키, 포르쉐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과 협업하였으며, 평창올림픽 성화봉, 문화비축기지, 대구문화예술회관 등의 미디어 파사드 전시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서울시무용단 〈스피드〉(2026)의 비주얼 디렉터를 맡았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