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 영화와 만화 장르의 형태, 내용, 전통에서 큰 영향을 받은 류한솔(b. 1989)의 작업은 영상, 드로잉, 설치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퍼포먼스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작가는 평소 신체 변형과 연관해 떠오르는 촉각적 상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포착된 공포와 유머의 모순된 감각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류한솔, 〈퐁퐁〉, 2014,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7초 ©류한솔

류한솔은 대체로 B급 고어 영화와 만화적 어법을 차용해 왔다. 그러한 미디어에서 신체를 ‘훼손’하기 위해 일상적 사물에 저급하고 과장된 특수효과를 입힐 때 그로테스크와 유머 감각이 공존한다고 보았고,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낙차에 주목했다.
 
초기의 작업에서 류한솔은 이와 같은 상충하는 감정 혹은 감각을 유발하는 요소에 흥미를 가져오며, 그것들을 재조합, 재조립한 영상을 제작해 우리 사회와 젠더 규범 등에 내재한 부조리를 그로테스크한 유머로 변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류한솔,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 2018, 비디오, 컬러, 사운드, 26분 52초 ©류한솔

이러한 그의 작업에서 촉각적인 신체 이미지가 주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이는 과거에 우연히 본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B급 고어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의 신체 이미지와 사고 현장에서 보이는 인간의 신체 이미지가 사실 여부에 따라 무섭거나 웃기고 또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작가는 실제와 허구 사이의 간극에서 그 거리감에 따라 공포가 웃음이 되고 웃음이 공포가 되는 상황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작업하기 시작했다.


류한솔, 〈고오오오〉, 2018, 종이에 아크릴, 69x113cm ©류한솔

이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작가는 어떠한 감각보다도 촉각을 자극하는 방식을 택한다. 초-리얼한 시각물이 넘쳐나 지나치게 시각에 치중하는 오늘날, 촉각이라는 감각이 가장 결핍되어 있고, 동시에 그가 느끼기에 어떤 이미지를 가장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촉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류한솔, 〈버진 로드〉, 2021,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21초,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 전시 전경(서울시립미술관, 2021). 사진: 글림워커픽쳐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예를 들어,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영상 작업 〈버진 로드〉(2021)와 드로잉 설치작업 〈츄-윙〉(2021)은 촉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시각 이미지와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다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먼저, 〈버진 로드〉는 인간-괴수가 자기 자신과 결혼식을 올리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그린 영상이다. 보통 결혼식 장면은 로맨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갈등의 해소와 행복한 결말을 상징하는 클리셰로 활용되어 왔다면, 이 작업에서는 유혈이 낭자한 B급 고어 영화로 연출되어 통상적인 젠더 규범을 비튼다.


류한솔,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 전시 전경(서울시립미술관, 2021). 사진: 글림워커픽쳐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신체가 훼손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은 일상적이고 저렴한 재료로 표현되고, 그 뒤로는 상투적인 시각효과, 과장된 음악, 조악한 크로마키 배경 등이 깔리며 공포와 유머 사이를 오간다.
 
한편, 벽에 그려진 〈츄-윙〉은 소리와 동작을 연상시키기 위해 만화에서 사용하는 시각적 어법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영상의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청각적이거나 촉각적인 요소에도 주의를 기울이게끔 이끈다.


류한솔, 〈버진 로드〉, 2021,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21초 ©류한솔

이렇듯 류한솔은 물질을 과장해 재현해낸 시각물을 통해 더욱 증폭된 감각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때 작업에서 나타나는 신체 훼손의 행위는 가학적 의미의 폭력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사회적으로 온전한 모습의 신체 형태를 규정하고 억압하는 규율과 권력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은유를 담는다.
 
마치 ASMR 영상처럼 시각, 촉각, 청각이 한데 어우러지는 그의 영상은 그러한 요소들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신체 해방’의 과정 속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고 해방감의 ‘쾌’를 불러일으킨다.


류한솔, 〈버진 로드〉, 2021,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21초 ©류한솔

한편, 허술한 소품과 과장된 특수효과는 잔혹해 보이는 영상 속 서사에서 벗어나 대상의 물질성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어 리얼리티와의 거리를 이격시킨다. 가령 몸이 반으로 갈라지고 척추뼈가 드러날 때 실제와 유사한 척추뼈의 재현물을 보여주는 대신 무심하고 힘없이 묶여 있는 일회용 케이블 타이를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류한솔은 이러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과 재현의 체계를 드러내고, 이 과정을 통해 서사에서 벗어난 소품들이 만져지고 보이는 현실성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 속 유머러스한 장치들은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대상을 물질적으로 응시하고 오늘날의 리얼함에 대해 고민하게끔 한다.


류한솔, 〈여드름〉, 2022, 라텍스, 실리콘, 면봉, 스테인리스, 38.4x15x15cm. 《스티키》 전시 전경(무목적, 2022) ©무목적

2022년 무목적에서 열린 2인전 《스티키》에서 류한솔은 이러한 공포와 쾌가 공존하는 실험을 촉각적인 조각의 형태로 풀어냈다. 전시에서 그의 조각은 유기적인 신체 대신 몸의 일부를 확대 혹은 변형한 일종의 모형으로, 바닥에 깔려 있거나, 벽에 걸려 있거나, 좌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류한솔, 〈두피양탄자〉, 2022, 실리콘, 스펀지, 우레탄고무줄, 180x170x6cm. 《스티키》 전시 전경(무목적, 2022) ©무목적

두피, 손가락, 혀, 머리카락과 같은 부위가 신체를 떠나 공간을 차지한 광경은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온다. 긴 쪽이 180cm가 넘는 살색 실리콘 양탄자로 구현된 두피, 단단하게 뽑혀 나온 혀, 길게 늘어진 유토 손가락 등은 전통 조각 재료 대신 촉감 놀이에 사용되거나 신체의 탄성을 미묘하게 닮은 소재를 사용하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울렁거리고 닭살이 돋게 한다.
 
이러한 류한솔의 조각은 그의 영상 작품이 주는 쾌감이 집약되어 있다. 조각은 영상이 지닌 설정이나 맥락이 소거되고 여러 장면의 진행이 한순간으로 포개진 상태라 볼 수 있다. 거기에 압축된 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과 짜릿함이 결합된 무언가에 가깝다.


《Every Body, Come On! Yo!》 전시 전경(뮤지엄헤드, 2023) ©뮤지엄헤드

그리고 2023년 뮤지엄헤드에서 열린 개인전 《Every Body, Come On! Yo!》는 2011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영상, 퍼포먼스, 회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가로질러 전개되어 온 류한솔의 ‘인체 분해-쇼’를 한데 모아 선보였다.
 
침이 추적추적 흐르는 혀, 핏자국이 선명히 남은 뚫린 몸통과 부서진 머리 같은 것이 전시장을 메우고 있었다. 떼어낸 살은 짓이겨져 액체를 뿜어내고 국수 가락처럼 늘어나는 몸은 한계를 모르고 뻗어 공간을 방해했다.


《Every Body, Come On! Yo!》 전시 전경(뮤지엄헤드, 2023) ©뮤지엄헤드

이 전시에서 몸은 온전한 하나가 아니라, 흩어지고 부서질 수 있는 개별 존재들의 집합이다. 주어진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제멋대로 움직이는 파편, 그저 촉각적으로 넘쳐 흐르는 몸은 기존 의미의 관계망에서 벗어나는 물리적인 덩어리가 된다. 의미가 부재한, 의미를 거부하는 몸은 정체모를 해방감과 기괴한 농담으로 다가온다.  


《Every Body, Come On! Yo!》 전시 전경(뮤지엄헤드, 2023) ©뮤지엄헤드

이렇듯 류한솔의 작업은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며 사회적인 규범과 의미망에서 벗어난 ‘몸’ 자체를 풀어내 왔다. 분해되고 뒤집힌 몸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이미지 덩어리로 확인시키며 그 수상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류한솔은 B급 고어 영화의 문법을 차용해 현실성과 허구성을 의도적으로 뒤섞으며, 잔혹함에서 시작해 유쾌함을, 그리고 종국에는 정체 모를 해방감에 도달하게 만든다.

"평소 신체 변형과 연관해 떠오르는 촉각적 상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포착한 공포와 유머의 모순된 감각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 모순된 것들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낙차에 관심이 많다. 이 낙차는 주로 그로테스크와 유머 감각이 공존하고 있을 때 생긴다." (류한솔, 더아트로 인터뷰 중)


류한솔 작가 ©해든뮤지움

류한솔은 성균관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개인전으로는 《Every Body, Come On! Yo!》(뮤지엄헤드, 서울, 2023), 《THE PICTURE SHOW》(미학관, 서울, 2021-2022),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성균갤러리,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리움미술관, 서울, 2024), 《Summer Screening Night》(팩션, 서울, 2024), 《스티키》(무목적, 서울, 2022), 《The Raw》(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2),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1), 《Pack: 모험! 더블 크로스》(탈영역우정국, 서울, 2019), 제4회 공장미술제(문화역서울284, 서울, 2014)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