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진, 〈밤의 온도〉, 2018, 캔버스, 종이에 먹, 181x223cm ©권세진

밤 열한 시,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 권세진은 작업실에서 나와 집으로 향한다. 버스정류장과 한강의 편의점, 표류를 마치고 한 켠에 떠있는 오리배, 강의 일렁임과 도시의 밤이 품은 어스름이 그의 귀로(歸路)에 가만히 몸을 옹송그리고 있다. 그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한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것은 의도를 가지고 풍경을 오려내는 방식보다는 궁심하며 밤거리를 거닐던 자신과 풍경이 문득 포개지는 순간을 포착하려는 몸짓에 더 가깝다,
 
복잡한 와중에 만나는 풍경은 예사롭지 않다. 그것은 풍경이 낯설기 보다는 순간, 나의 심리적 상황이 그 풍경에 몰입이 되면서 낯설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사진에 찍힌 장면을 그대로(선택적 연출 없이) 화폭에 옮긴다. 그것은 관념적이고 정신적인 기운의 포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순간에서 내가 바라본 어떤 풍경을 자신의 몸 쓰임을 통해 기록하려는 의지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가 서있던 자리에서, 그의 시점으로 풍경을 바라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가 기록한 귀로의 장면들은 그가 본 풍경의 대리-재생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귀로의 풍경들은 작가의 몸과 교차하며, 어떠한 야릇함을 발생시키는가?
 
《귀로》에 전시된 그림들은 (단 몇 점을 제외하고는) 10×10cm의 정사각형 조각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하나의 화면이다. 일견 디지털 화면의 픽셀처럼 보이는 조각들은 확대한 카메라의 시선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으나, 막상 화폭에 다가선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각각의 사각형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필선의 포개짐이다. 권세진이 ‘조각그림’을 그리게 된 데에는 아주 실재적인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처한 일상적인 상황의 조건 내에서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싶은 바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스케일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며, 매일 작업하는 양을 체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리는 몸의 호흡을 유지하는 데에 용이하다.
 
그는 화면을 이루는 조각의 왼쪽 상단부터 번호를 매겨, 한 칸 한 칸 톺아가며 먹으로 채색을 한다. 조각 단위로 그림이 형상을 드러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완성된 조각과 조각 사이에는 시차가 발생한다. 각각의 조각은 풍경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몸의 흔적(필선)과 조각이 완성되었을 만큼의 시간을 간직한 집적물이다. 또한 조각들은 그것이 간직한 어둠과 빛이 상호작용하여 표층으로 떠오르기 이전까지는 다만 가능태(可能態)로 웅크리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여들어 ‘비로소’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조각그림은 풍경에 몸을 접하려는 작가의 육체적이며 수행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번에는 그가 표현하는 어둠에 주목해보자. 《귀로》가 간직한 어둠은 한 치가 보이지 않는 야생의 어둠 보다는 음예(陰翳)와 밀접하다. 깊은 밤, 물먹은 난층운(亂層雲)을 바라보는 것 같은 부드럽고 따듯한 어둠이 포근하고도 고집스레 형상을 감싼다. 달에 비친 살결이 빛을 머금은 윤곽을 드러내듯 먹이 스민 얇은 한지의 틈으로 풍경이 희부윰하게 몸을 드러낸다. 그는 동양화의 주재료인 먹과 한지를 매개로, 명암의 변주를 통한 다양한 효과들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캄캄한 밤하늘과 밝게 빛나는 편의점, 그리고 어지러이 밟힌 눈이 먹의 농담과 명암의 조율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 된 〈편의점〉외에도, 〈물결〉과 〈밤의 온도〉에서 두드러진다. 〈물결〉이 광원(光源)에서 고르게 내리 쬐는 풍부한 빛의 일렁임을 포착했다면, 〈밤의 온도〉는 수면과 멀지 않은 높이에서 보는 이를 향해 내리쬐는 빛을 표현한다.

아마도 물가에 제법 가깝게 서서 포착했을 수면의 눈부심은 차라리 해가 뜨는 와중의 빛의 산란에 가깝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유일하게 눈을 가까이 대고 바라보는 〈수면〉을 통해 관심사를 재차 내보인다. 이와 동시에 〈수면〉은 화면을 이루는 일렁임의 조각이 단지 먹의 얼룩임을 확대하여 보여줌으로써 매끄러운 화면이 가지는 완결성의 환상을 재차 흩뜨리려 시도한다.) 사물이 가진 형상은 단호하지 않게, 그가 차곡차곡 포개어 올린 음예의 층위와 융화된다.
 
이처럼 권세진의 회화는 풍경에 몸을 접하려는 무수한 시도와 흔적이 쌓이는 만큼의 시간, 그것을 간직한 개체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엮여 드러나는 순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풍경에 의해 발견된 자신과 자신이 본 풍경이 일체 되는 순간을 포착하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이러한 순간을 박제하지 않고 시공간의 층위로 떠오르도록 하려는 태도와 연결된다.
 
다시금 돌아가는 여정에서, 문득 몸과 포개진 이 풍경들은 한밤 중 어떤 이야기를 속삭이는가?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