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b. 1988)은 존재의 견고함이 흐려지고 유동적으로 변하는 찰나의 순간에 주목한다. 특히, 작가는 오랜 시간동안 ‘신체’를 사유하며, 익숙했던 자신의 몸이 돌연 낯설고 물성적인 감각으로 인식되는 순간에 주목해 왔다.
 
스쳐가는 감정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그의 작업은, 익숙함에서 벗어난 낯선 순간 속에서 드러나는 대상과 그 바깥의 경계에 대해 사유한다.


김찬송, 〈Canvas in Gray〉, 2014, 캔버스에 유채, 162.2x112.1cm ©김찬송

김찬송의 작업은 사진 촬영 과정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스스로의 분절된 신체 이미지에서 느낀 낯선 감각에서 출발하였다. 어느 날 혼자 타이머를 맞추고 사진을 촬영한 결과, 화면 속에는 얼굴을 제외한 몸만이 남아있었다.
 
작가는 화면 속 얼굴이 사라진 몸을 마주하며, 가장 가까운 존재라 믿었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찰나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작가 노트에서 그는 그 때의 신체가 마치 “이방인처럼, 때로는 그저 덩어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김찬송, 〈Frontier〉, 2015, 캔버스에 유채, 193.9x130.3cm ©김찬송

어느 순간, 가장 친숙했던 나의 몸이 어떤 경계의 바깥에 놓인 것처럼 다가온 것이다. 곧 사진 속 낯선 몸은 작가로 하여금 “주체를 흔드는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이질적이고 불안정하며, 그 누구도 지시하지 않은 채 모호한 경계 어딘가에 머무르는 덩어리로서 존재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김찬송은 사진으로 찍은 자신의 몸을 다시 회화로 옮기며 관찰되는 몸과 바라보는 주체 사이의 거리와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 ‘Uncanny Gap’ 연작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먼저 작업 초반 단계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한다. 이러한 반복적인 과정을 거치며 주체는 처음과는 달리 ‘몸’이라기보다는 ‘사물’의 역할로 소비된다.

김찬송, 〈Island of Loss〉, 2016, 캔버스에 유채, 65.1x90.9cm ©김찬송

그리고 회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신체는 부분이 끊기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며, 점점 더 누구의 몸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캔버스 화면 속으로 다시 한번 옮겨진 대상은 그 모호한 경계 어딘가에서 주체와 함께 정지한 순간으로 남는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 속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한 타자가 경계를 흐리며 드러나기 시작한다.
 
2016년 작품인 〈Island of Loss〉를 기점으로 ‘Uncanny Gap’에서 신체는 손, 발, 상체 등 특정 부분이 강조되고 확대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방식은 신체의 익명성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몸의 전체를 각각의 화면에 분절하고 확대함으로써 작품을 바라보는 주체의 고정된 관념과 대상 사이의 경계가 더욱 흐려진다.

김찬송, 〈Garden of Mistrust〉, 2018, 캔버스에 유채, 72.7x53cm ©김찬송

한편, 김찬송의 또 다른 연작 ‘Garden of Mistrust’는 외래종으로서 타지에 정착한 식물이나 산책 중에 수면 혹은 안개 어린 공기를 통해 본 뭉그러지고 사라지는 풍경을 담는다. 2015년, 김찬송은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며 그곳의 아름다운 식물원과 공원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그 안의 많은 식물들이 사실 여러 대륙에서 온 외래종임을 알게 되며, 새로운 것이 도착해 기존의 것을 흐리게 하고 다시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김찬송, 〈Garden of Mistrust〉, 2018, 캔버스에 유채, 112x162cm ©김찬송

이후 김찬송은 이방의 식물들이 이곳에서 원래 자라고 있던 것들과 막 경계를 충돌하기 시작하던 오래 전의 풍경을 상상하였다. 서로 다른 대륙의 식물들이 모이고 기존의 식물들 바로 옆에서 자라며 꽃을 피웠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새로운 것들은 현지에 맞는 모습으로 변해 갔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을 기반으로 완성된 그의 화면은 부러지고 우거지고 새로 엮이고 색이 변하는 등 이방의 것이 기존 사회 속에 들어와 혼란을 만들어내며 다른 풍경을 이루어 내는 장면을 담는다. 화면 속 흐르는 물감과 역동적인 붓질의 흔적은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이 서로의 경계를 맞대고 뒤섞이며 충돌하는 순간의 긴장감과 맞물린다. 


《Border of Skin》 전시 전경(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2023) ©김찬송

이렇듯 ‘나’의 신체에 얽힌 경계,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 사이의 경계에 대한 김찬송의 시선은 겉에서 안으로 스미는 회화의 물성으로 나타난다. 2023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개인전 《Border of Skin》은 신체의 경계, 그리고 피부와도 같은 캔버스 표면에 주목한다.
 
김찬송은 살갗 위 풍경을 회화로 표현함으로써 떠도는 표면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피부 위를 맴도는 시선들은 표면 위를 머무르기도 하고, 그 안으로 통과되기도 한다. 투과되는 외부의 자극은 경계가 되는 살갗, 즉 캔버스 표면에 영향을 미치고, 표면을 맴도는 작가의 시선은 회화라는 물질로써 드러난다.
 
미끄러지며 혼합되는 물감들의 형상은 분리되는 상황과 결합되는 자극들을 표현하며, 얄팍해지는 경계에 대해 말한다.


《Border of Skin》 전시 전경(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2023) ©김찬송

정희라 큐레이터는 전시 서문에서 신체 풍경처럼 보이는 일련의 작업들에 대해 “어떠한 개입을 통해 변화가 안착되어 가는 과정들을 담아내며, 과정의 통로가 되는 우리의 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 전시에서 신체의 부분들은 ‘Garden of Mistrust’ 연작과 함께 놓였다. 그의 신체 풍경들은 낯선 개입을 통해 A와 B를 이으며, 그 사이에 혼란을 낳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Garden of Mistrust’ 연작과 어우러지며,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자극과 반응, 낯선 것이 다가왔을 때 느끼는 감각과 감정 모든 것이 우리 몸을 통과하는 과정을 상기시킨다.


김찬송, 〈허물어지고 부딪히는〉, 2021, 캔버스에 유채, 112.1x162.2cm ©박서보재단

최근의 작업에서 김찬송은 익명의 몸에서 더 나아가 ‘피부’라는 표면에 집중하며,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탐구했다. 피부에 대한 관심은 우연히 팔에 맺힌 땀방울을 마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 순간 작가는 자신이 인식하기 이전부터 피부는 외부와 호흡하며 생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강렬한 실존적 자각을 느끼게 되었다.


김찬송, 〈Skin and Green Shadow〉, 2023, 캔버스에 유채, 162x260cm ©박서보재단

김찬송에게 피부는 경계이자 접촉점으로서 시간과 만남의 흔적을 기록하는 유동적인 표면이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내게 점점 피부는 물리적으로 우리 신체의 외피임을 넘어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세상을 담아내는 막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처럼 피부라는 표면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어낸 사건들과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새기는 장소이지만, 어느 순간 단단한 새로운 경계를 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들은 피부에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 아래 어딘가에서 겹쳐진 여러 막으로 숨쉬고 있기도 하다.


《허물어지고 부딪히는》 전시 전경(박서보재단, 2025) ©박서보재단

김찬송은 회화를 통해 그 숨겨진 레이어를 표면, 질감에 대한 고민과 함께 피부 위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2025년 박서보재단에서 열린 개인전 《허물어지고 부딪히는》은 작가가 탐색해 온 신체가 가지는 물성에 초점을 맞췄다.
 
섬세하게 변주하여 사용한 유화 물감은 김찬송의 화면 위에 층층이 쌓이며, 드러난 살갗을 구성하는 물질이 된다. 두터운 물감 위로 거친 흔적을 남기거나 스치듯 물감을 떨구는 붓의 움직임은, 스치는 바람의 감각, 피부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궤적 등 살갗 위에 남겨지고 흐르는 것들을 기록한다.
 
이렇듯 그의 작업에서 피부는 단순한 형상의 외곽이 아니라 감각의 매개자이자 내부와 외부를 잇는 경계로 자리한다. 허물어지고 부딪히는 몸의 경계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존재의 선연한 잔상이 된다.


《Vein and Fever》 전시 전경(파이프 갤러리, 2025) ©파이프 갤러리

그리고 2025년 파이프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Vein and Fever》에서 김찬송은 피부라는 경계의 더 깊은 곳에서 미세하게 진동하는 감각의 층위를 표현한 새로운 연작 ‘Vein and Fever’를 선보였다.
 
‘Vein’은 신체 내부에서 흐르는 리듬, 감각 이전의 미세한 파동을 상징하며, ‘Fever’는 그 흐름이 표면으로 드러나 순간적으로 고조되는 감각의 출현을 의미한다. 김찬송은 이 두 지점을 넘나들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감각의 물결을 화면 위로 불러낸다.


김찬송, 〈Beneath the Surface〉, 2025, 캔버스에 유채, 91x91cm ©김찬송

김찬송은 자신의 몸을 그리지만, 그것은 더 이상 구체적이거나 재현적인 몸이 아니다. 김찬송의 회화는 공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의 인지를 시각적 감각으로 풀어내며, 외부 세계가 끊임없이 우리 내부로 침투하려는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피부는 이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며, 매 순간마다 흔들린다. 《Vein and Fever》에서는 이 흔들리는 표면을 구현하는 붓질과 물감의 질감, 속도와 방향의 변화가 어우러지며, 감각이 떠오르고 사라지고 응고되는 상징적 연쇄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김찬송, 〈The Skin of Water〉, 2025, 캔버스에 유채, 72.2x72.2cm ©김찬송

작가는 우리 몸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물이 증발해 구름이 되고, 비로 내린 뒤 다시 얼음이 되는 과정을 상상하였다. 이는 감각이 몸 안에서 시작되어 바깥을 거쳐 다시 응고되는 하나의 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얼음은 단순한 물질이 아닌, 내면에서 외부로 흘러나간 감각이 다시 형체를 얻어 돌아온 상태이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의 덩어리로 작용한다.
 
가령, 〈The Skin of Water〉(2025)는 ‘물’이라는 매질을 통해 피부에 대한 사유를 더 넓은 감각의 순환과 유동성의 층위로 끌어올린다. 살갗을 담은 회화들 사이로 드문드문 설치된 설경은 얼음, 수증기, 물이라는 상태를 오가며 물의 순환적 변형을 담아내며, 작가는 이를 자신과 관계 맺는 매질로서 피부의 또 다른 비유로 삼는다.


김찬송, 〈Tails〉, 2025, 캔버스에 유채, 193.9x130.3cm ©김찬송

이렇듯 김찬송은 나를 이루는 것과 나를 둘러싼 바깥의 것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경계에 대해 사유하며, 이를 회화라는 언어로 번안해 왔다. 그의 화면 속 낯설고도 익숙한 신체와 자연의 모습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각을 다시금 의식하고, 몸이라는 경계 안팎에서 진동하는 감정과 기억, 에너지의 흔적들을 인식하게 만든다.

 "올바로 감각하지 못하고 남겨진 몸 덩어리들이 캔버스 위에서 확대되어 파고드는 공기와 함께 새로운 경계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김찬송, 작가노트) 


김찬송 작가 ©Artue

김찬송은 국민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개인전으로는 《Vein and Fever》(파이프 갤러리, 서울, 2025), 《허물어지고 부딪히는》(박서보재단, 서울, 2025), 《Border of Skin》(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주, 2023), 《The Blue Hour》(파이프 갤러리, 서울, 202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Small Paintings – My Bijou》(김리아 갤러리, 서울, 2025), 《My World in Your World》(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4), 《Discovery : 12 Contemporary Artists from Korea》(록펠러 센터, 뉴욕, 미국, 2023), 《The Body of Non-body》(Brownie Project, 상하이, 중국, 2022), 《하드너》(을지예술센터, 서울, 2022), 《Boundary》(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찬송은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대전, 2021), 파리 이응노 레지던스(보-쉬르-센느, 프랑스, 2018) 등에서 입주 작가로 활동했으며, 그의 작품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박서보재단, 청주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