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Far in My Mirror》 © ThisWeekendRoom

“당신의 집에는 거울이 몇 개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은 ‘화장실 거울, 현관 거울, …’ 등의 방식으로 거울의 수를 세 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준 이상의 상상력과 통찰력을 지닌 사람은 좀 더 폭넓은 셈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가령 ‘잠깐, 내 서재에도 거울이 있나?’라고 자문한 뒤 ‘아, 그러고 보니 내게 가장 소중한 책 가운데 하나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선집이고, 나는 디킨슨의 시를 감상할 때마다 내 자신을 응시하기에 이 또한 거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자답하며 그 시집을 비롯하여 서재의 책꽂이에 놓인 또 다른 거울들을 재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가시광선을 물리적으로 반사시킬 수 있는 물체만 거울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물체로 볼 수 없는 자기 정체성의 단면들은 그 관찰과 이해를 위해 좀 더 특별한 거울을 요구한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거울들은 적지 않은 경우 우리가 그것을 보거나 경험하기 전까지는 거울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마크 로스코의 전시, 조수미의 공연, 그리고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우리가 눈물을 닦으며 자신을 재발견하는 건 전시장, 공연장, 그리고 극장을 떠날 때이지 않은가, 입장할 때에는 손수건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수용성 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경험을 한 뒤 파우더 룸의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칠 것이다. 어떤 거울은 화장을 망치고, 어떤 거울은 화장을 고친다. 어떤 거울은 우리의 표정을 보여주고, 어떤 거울은 표정을 만든다.

Installation view of 《Far in My Mirror》 © ThisWeekendRoom

이런 방식으로 예술의 여러 기능 가운데 ‘거울 능력’이 존재함을 확인하는 게 가능하다면, 자기 성찰을 주제로 하거나 그에 대한 특별한 영감을 제공하는 예술은, 가령 곽상원과 박신영의 작품들은, 마치 오목 거울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평면 거울보다 상이 크게 맺히기 때문에 얼굴의 일부를 좀 더 크게 보고 싶을 때 오목 거울이 필요한 것처럼, 즉 오목 거울이 제공하는 크기의 확대적 왜곡이 필요한 것처럼, 얼굴의 눈이 아닌 눈으로 자신의 일부를 좀 더 자세하게, 또는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 때에는 확대적 왜곡과 같은 자기 성찰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곽상원과 박신영, 두 작가 모두의 작품 세계를 감상하며 ‘낯선 환경 속의 나’라는 공통분모를 통찰하는 사람은 낯선 환경 속에서 낯선 경험을 하는 자신이 그 환경 속 사람들이나 다른 대상들, 즉 그 환경이 낯선 게 아니라 친숙한 존재들과 대비됨을 경험하며 평소보다 자신의 정체성이 왜곡되어 확대되는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평소보다 좀 더 상세하게, 또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도시라는 공간이 갖는 지리적 특성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속성 등으로 구성된 자신의 일상과 거리가 먼 환경에 두 작가의 미술적 자아가 배태된 모습이 각자의 작품에 담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형태적으로 봤을 때 박신영의 자아는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반면 곽상원의 자아는 여러 작품에서 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인지될 수 있다.

하지만 전자는 자신이 낯선 환경에서의 낯선 경험이 그로 인해 느낀 낯선 심정과 섞여 마치 꿈 속에서 등장한 모습을 표현한 것과 같은, 따라서 그 경험과 심정의 충돌과 결합으로 구성된 변증법으로 인해 그 이전과 이후의 자신을 좀 더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여정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인상을 제공하고, 후자 또한 낯선 환경 속에 배태된 자아의 표현을 통해, 즉 비록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아는 것은 어렵다 하여도 우리 자신이라는 존재는 적어도 우리에게 완전히 낯선 것보다는 친숙하기에, 그런 우리가 완전히 낯선 환경과 조우할 때 그 대비를 통해 자신에 대한 친숙함이 더 강렬해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새로운 환경의 감각과 그 환경하고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즉 두 작가 모두 서로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좀 더 온전한 자기 이해로의 여정을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Installation view of 《Far in My Mirror》 © ThisWeekendRoom

더 나아가,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는 점에서, 누구나 낯선 환경에 놓이면 그 순간 자신에게 그나마 가장 친숙한 것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임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작가의 예술적 궤적이 교차한다는 모두의 감상이 가능할까: 그렇게 우리는 이 두 작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 모두의 공통분모를 확인하고 집단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고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상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실천을 위해, 두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실천이 물리적 거울을 바라보는 것보다 낯설더라도 우리의 오늘을 진솔하게 내성하고 훌륭한 예술처럼 찬란할 수 있는 내일을 응망할 수 있는 경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안재우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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