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심》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13) ©OCI 미술관
강동주 – 음예의 접면으로 음예의 접면을 그리는 방법
01. 신예 미술가 강동주(1988-)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누구의 손으로 그릴 것인가?”라는 동시대
공통의 질문을 마주한 채, 포스트-미디엄의 상황(post-medium situation)에 부합하는 문제적 형식으로 ‘그리기’라는 행위를 재정의·재발명해내고자 애쓴다.
02. 어떤 신인 화가가 제 주제-물(subject matter)을 찾았다고 하면, 그건 평생에 걸쳐 진행될
화업(畵業)의 대주제를 구체적 주제로 포착했다는 것과 함께, 그를 표현할 최적의 질료와 형식을 찾았다는 뜻이다. 강동주의 경우, 최종 형식을 강제해내는 작업 내용은, 음예(陰翳)의 도시 공간 혹은 도시 공간의 음예적 접면(interface)이다. 그리고, 그를
구현하는 최적의 재료는, 특별한/특정한 프로토콜을 따르는
연필과 먹지와 종이, 그리고 유채와 캔버스다. (비고: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1886-1965]에 따르면 음예란,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을 뜻한다.)
03. 2010-2011년에 전개한 ‘퍼레이드’ 연작에서 작가는 도심의 방진막을 주제 삼아 가리는 것과 가려지는 것을 동시에 그려내고자 노력했다. 사진기로 방진막을 촬영하고, 그를 유화로 옮겨 그렸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방진막 사진을 유화로 옮겨 그린 예외적 경우도 몇몇 있다.)
〈안강중학교〉 〈서울 송파구 석촌동 236-06 고암빌딩〉 〈경기도 연천군 철산면 초성리 kcc〉 등 장소를 적시하는 제목을 단 그림들은, 작가에겐 회화적
탐구―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접면을 주제로 삼은―의 출발점이자
미적 종부돋움의 발판이 됐다.
04. ‘퍼레이드’ 연작이
지닌 모호함에 관해 다소 불만족을 느끼던 작가는, 2012년 ‘볼
일이 없어서 볼 수 없는 것의 처지’란 몹시 자명하고 다소 지루하고 우스운 연작을 전개했다. 장시간 버스를 타야했던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뒷통수들을, 바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머리로 한정해 가르마 부분만 드로잉으로 옮기고 버스 번호와 드로잉 번호, 제작
날짜와 시간(예컨대, 첫 드로잉의 제목은 〈720-1 01.15 08:15〉)을 적어 넣었다. (비고: 이 버스 안 드로잉은, 이동
중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공간적 제약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시공간 특정성을 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05. 작가 강동주의 남다른 작업 특성―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접면을 적절한 음예의 방식으로 기록하는―이 도드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 개인전 〈정전〉에서였다.
강동주, 〈부도심-빛 드로잉〉, 2013, 종이에 연필, 30x122cm (26점) ©강동주
〈정전〉
작업 1부: 2012년 5월 3일 20시부터 4일 20시까지 전시 장소인 누하동 256번지의 유리창을 중간 지대(접면)로 삼은 화가는, 매시간
유리창에 비춰진 맞은편 주택가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빛의 궤적을 먹지 드로잉으로 옮겼다. (비고: 먹지에 남은 드로잉과 먹지 위에 놓은 백지에 남은 드로잉과 먹지로부터 전사된 이면의 드로잉, 세 가지 모두 작업이지만, 갤러리 공간엔 먹지 드로잉만을 제시했고, 백지의 이면에 전사된 드로잉―빛을 음예로 전치시켜 놓은―은 전시 홍보물에 인쇄된 모습으로만 공개했다.)
〈정전〉
작업 2부: 누하동 256번지
유리창 뒷면에 덧붙여져 있던 나무판을 비가시성을 일으키는 가로막이의 접면으로 해석한 작가는, 이를 뜯어내
전시 작품의 일부로 삼기로 작정한다. 나무판 철거 당일, 기존에
전개한 25시간 드로잉(5월 3일부터 5월 4일까지)의 작업 시간을 총합한 약 258분간, 떼어낸 판재의 표면에 조각칼과 망치로 이날 풍경의 움직임을 아로새겼다.
2012년 5월 25일 오후 7시 종로구 누하동
256번지에서 조명을 끈 채 손전등 불빛으로 개막한 전시는, 6월 8일까지 이어졌고, 전시 관람 시간은 오후 7시에서 10시로 제한됐다.
06. 2013년 8월 개막 예정인
두 번째 개인전 〈부도심〉을 위해 작가 강동주는, 〈빛 드로잉〉 〈달 드로잉〉 〈하늘 회화〉 세 가지
연작을 전개했다. 이 세 연작은 실상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부도심
지역을 관통하는 자동차 여행의 비디오 촬영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청량리 재개발 구역에서 출발해
영등포를 거쳐 다시 청량리에 도달하기까지의 동선을 계획하고 그에 따라 보름달이 뜨는 2013년 2월 25일 일몰시간인 6시 28분부터 승용차(쏘렌토)로
이동하면서, 좌우 거리의 풍경과 하늘의 풍경을 비디오카메라 석 대로 촬영했다. (세부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청량리 – 동대문 – 종로 – 광화문 – 충정로 – 아현 – 신촌 – 합정 – 양화대교 – 영등포 – 양화대교 – 합정 – 신촌 – 아현 – 충정로 – 광화문 – 종로 – 동대문 – 청량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