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준·필리프 로에슈 2인전 《플립 오버》
미술은
자신 안팎에 놓인 다양한 관계를 매개한다. 재료의 성질과 화면의 환영이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동안
그리는 손과 바라보는 시선은 끝없이 맞닿고 또 헤어진다. 작가와 관객의 시야가 포개어지는 순간마다 서사는
거듭 쓰인다. 전시라는 사건을 직조하는 동력 또한 작품을 둘러싼 대화적 시간 가운데서 생겨난다.
홍성준이
한남동 소재의 갤러리 디스위켄드룸(대표 김나형)의 2인전 《플립 오버(Flip Over)》에 참여하고 있다. 독일 작가 필리프 로에슈(44)와 함께 선보이는 전시다. 박지형 큐레이터가 담당한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매체와 기법으로 표현을 발전시킨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하나의
공간 안에 중첩해 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홍성준이
평면 캔버스에 그린 이미지의 매끈한 표면에 집중한다면, 필리프 로에슈는 상대적으로 묵직한 부피감을 지닌
돌과 책 등의 지지체 위에 고전에서 현대를 아우르는 미술사 서적에서 발췌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세밀한 필치로 묘사한다. 그리기의 행위를 통하여 텍스트를 이미지로 전환하는 일이다. 붓으로
그린 낱낱의 책장 속 문맥은 해체되고, 문자는 그림이 된다. 홍성준은
회화의 물성을 통하여 눈앞의 시각세계를 재정렬하고, 필리프 로에슈는 문자 언어로 쓰인 역사의 파편을
현재의 시공으로 불러들여 직관적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
각자의
문화권 내에서 익힌 지식과 감각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새롭고 특별한 운율을 만들어낸다. 저마다
서울과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두 작가의 만남은 디스위켄드룸에 의해 이루어졌다. 작품세계를 공유하고
태도를 참조하며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디스위켄드룸은 2015년 처음 문을 연 상업 갤러리다. 2021년 지금의 한남동
위치로 이전하며 전시 공간 및 기관 정체성을 재정비했다.
촘촘히
맺은 관계의 확장: 더 큰 세계를 향하여
디스위켄드룸의
김나형(45) 대표는 수년간 국내 유망작가들을 해외 미술 현장에 연결하는 작업에 공들여 왔다. 2021년 합류한 박지형(34) 큐레이터가 그의 곁에서 기획 및
세일즈 업무 전반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지형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리즈대학교
박물관학 석사 및 영국 코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미술사 석사를 취득했으며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큐레이터다. 광주비엔날레(2015∼2017), 페리지갤러리(2017∼2019)에 재직했으며 독립 큐레이터로서 《투명함을 닫는 일과 어두움을 여는 일》(2018, 조원동 강남아파트), 《멀고도 먼》(2021, 온수공간), 《최수앙: 플루리버스》 (2022, 갤러리 에스피) 등 다수의 전시를 선보였다.
김나형과
박지형의 협업 관계는 보통의 기관 대표와 직원의 그것보다 각별하다. 서로 진솔하게 대화하고, 수평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 그와 같은
소통 방식은 작가와의 관계에서도 유효하다. 기관의 특색을 유지하려는 노력 한편으로 개별 작가 작품세계에
관한 성실하고 다각적인 이해의 중요성을 명심하는 면모다. 이들은 그렇듯 촘촘히 맺은 관계망을 확장하여
더 큰 세계로 도약을 시도한다. “지난 2년여 중국, 홍콩, 대만, 일본 등의
아시아권과 독일, 영국, 이스라엘, 미국 등 세계 곳곳의 기관 및 작가들과 협력 관계를 쌓아 왔다”는
설명이다. “작품 판매를 넘어 작가와의 동반 성장, 촘촘한
전시 기획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우리에게 기획전은 역량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이야기가 뒤따른다.
디스위켄드룸이
주목하는 작가군은 주로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젊은 세대다. 작가로서 역량을 키우고 작품세계의 기반을 탄탄히 하는 과정에 동행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자는 의지다. 상대적으로 높은 예산과 노력이 투입되는 해외 시장 진출에서, 성장
단계 작가군에 주력하는 일은 위험 부담의 크기만큼 상호 진심 어린 애정과 믿음을 요구한다. 디스위켄드룸은
이달 말 교토에서 이채원, 김서울, 지희킴 등 소속 작가
단체전을 선보이며 2월에는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단체전에 김진희의 작품을 출품한다. 5월에는 상하이에서 김진희와 최지원의 2인전을, 10월에는 베를린에서 박지나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연중 국내에서는
영국 작가 애덤 보이드의 개인전 및 중동 작가의 개인전, 한국, 독일, 미국 작가들로 구성된 단체전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