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지(b. 1993)는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다루며 개인적인 서사를 수집한다. 개인의 감정과 관계, 그리고 신체를 통과하는 그의 작업은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를 다시금 감각하고 해석해보도록 한다.


《마고》 전시 전경(d/p, 2019) ©황예지

황예지의 첫 번째 개인전 《마고》(d/p, 2019)는 여성의 초상과 풍경, 사물의 사진을 통해 친밀하면서도 이질적인 이미지의 모계를 표현하였다. 초기의 작업에서 엄마와 언니의 관계라는 작가의 내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업을 이어왔던 작가는, 전시 《마고》에서 외부 세계로 서사를 확장해 나가는 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고》 전시 전경(d/p, 2019) ©황예지

전시의 제목인 ‘마고(Mago)’는 “남성 없이 인간의 사조를 만든다”는 신화 속 창조주인 ‘마고할미’에서 따온 것이다. 이러한 제목이 시사하듯이, 전시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여성’과 ‘사랑’이었다.
 
14점의 사진을 비롯해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 어머니의 토템을 확대하여 제작한 조각 작품 등으로 이루어진 전시는 모두 ‘여성’이라는 존재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빠르게 한 순간을 포착하기 용이한 ‘스냅 사진’으로 이러한 피사체들을 담아냈다.


《마고》 전시 전경(d/p, 2019) ©황예지

황예지는 기성 사진에서 인정받지 못한 장르인 스냅 사진을 전시장으로 가져와 순간적으로 포착한 여성들의 신체로써 일련의 연속된 흐름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이 사진들을 각각의 프레임 안에서 단일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연속성 안에서 문장구조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감상 방식을 유도한다.
 
아울러, 황예지는 이 전시를 통해 양성애자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백을 담았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고 여자의 생을 빌렸고 여자를 사랑했다. 여자의, 여자라서, 여자인. 그 이름이 내게 드넓다.”라는 작가의 노트는 전반적인 전시의 흐름과 함께 자신에 대한 내적인 이야기를 관통한다.


황예지, ‘마고’ 연작, 2019 ©황예지

또한, 전시 속 여성의 신체들은 소위 이상적이거나 아름다운 모습만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작가는 이를 통해 여성은 아름답거나 처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의 강인한 여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 속에는 살이 튼 모습 등과 같은 어그러진 것들이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황예지의 시선은 여성이 가진 ‘미와 ‘추’의 경계가 아니라 여성 본연의 모습을 숭고하게 다루는 방식에 향해 있다.


황예지, 〈리아〉, 2022, 단채널 비디오, 20분. 《Skyline Forms On Earthline》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2) ©황예지

어느 날 황예지는 사진기의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포착해 오며 촬영이라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앵글 밖을 배제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각성했다. 이러한 성찰과 함께 작가는 앵글의 바깥, 그리고 사회적 기준의 바깥에 위치한 ‘포착되지 않은’ 현실과 존재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가족을 잃은 지인과의 고백적인 대화로부터 비롯된 영상 작업 〈리아〉(2022)는 ‘리아’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죽음과 죽음의 변두리의 완력을 어렴풋이 더듬어본다.


황예지, 〈리아〉, 2022, 단채널 비디오, 20분. 《Skyline Forms On Earthline》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2) ©황예지

단절되는 내레이션, 불쑥 찾아오는 가려움증, 부스럼이 일어난 피부 등의 ‘증상'이 책이라는 물질로 변환되어 탈각되며, 이별을 담담히 감각하게 한다. 이는 사회적 통념과 기준 안에서 죽음의 가치와 애도의 수위가 판단되고 때로는 배제되기도 하는 현실을 반추하며, 모두에게 다를 애도와 이별의 과정, 의미를 재인식하려는 시도이다.


황예지, ‘거기에 있는 이들’ 연작, 2022, 《춤추는 낱말》 전시 전경(서울시립미술관, 2022) ©황예지

한편,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춤추는 낱말》에서 황예지는 지난 몇 년간 촬영한 스냅 사진에 더해 최근 촬영한 사진을 애도, 처연함, 사랑, 다정함 등의 감정을 따라 재구성하여 설치하였다.
 
서로 다른 크기와 높이로 연결되고 교차되는 사진들은 여러 개의 망을 따라 펼쳐진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는 사랑과 믿음, 환대의 감각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하나의 안락한 공간이자 둥지가 된다.


황예지, ‘거기에 있는 이들’ 연작, 2022, 《춤추는 낱말》 전시 전경(서울시립미술관, 2022) ©황예지

이러한 사진 연작 ‘거기에 있는 이들’(2022)은 그간 작가가 눈길을 주고 마음을 썼던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셀프 포트레이트, 가족,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한 친구, 세월호, 홍콩 민주화 운동 등을 담은 이 연작은 적당한 거리의 연결감을 인식하며 개인을 바라보는 사진과 사회를 바라보는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황예지는 이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엮음에 있어서 개별 작품이 서로 연결된 동시에 각자의 자리와 서사를 유지하며, 고유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정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부족한 별자리》 전시 전경(안팎스페이스, 2023) ©안팎스페이스

그리고 이듬해 열린 개인전 《부족한 별자리》(안팎스페이스, 2023)에서 작가는 우리 사회의 시공간에 깊이 스민 슬픔과 가난을 되짚으며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존재들을 담아냈다.
 
그의 카메라 렌즈에는 피붙이가 생긴 이후 ‘살길 잘했다’고 말하는 J, 한 사건을 빠져나오며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S, 언제 용역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아침을 나누어 먹는 L, 어떤 세계와 단절된 이후에도 아직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Y 등이 담겼다. 그리고 남겨진 풍경들과 소강된 순간의 풍광들이 함께한다.


《부족한 별자리》 전시 전경(안팎스페이스, 2023) ©안팎스페이스

황예지는 세월호, 홍콩, 수원 성매매 집결소, 이태원 참사, 보광동 재개발 등을 거치며 경험한 반복되고 소진되는 무력감 사이에서 또 다른 저항의 지형도를 그리고자 했다. 작가는 그 저항의 기술로서 아폴리트 바야르의 사진을 떠올렸다.
 
아폴리트 바야르는 ‘알부민 글라스 온 타입’의 계란 흰자를 이용한 종이 사진법을 연구하고 완성하였으나 프랑스 정부의 권유로 발표를 미뤘다. 그 사이 정부와 다게르라는 인물의 은판 사진법인 ‘다게레오 타입’이 공표됐고, 다게르는 최초의 사진이라는 온전한 명예와 권력을 차지했다.


《부족한 별자리》 전시 전경(안팎스페이스, 2023) ©안팎스페이스

아폴리트 바야르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사진 안에서 죽은 척을 하는 셀프 포트레이트를 남겼다. 황예지는 그 사진에서 이 지리멸렬한 시간을 건너갈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 이후 황예지는 ‘알부민 글라스 온 타입’을 암실에서 재현했다. 자신이 선택했던 아지랑이 같은 풍경과 사물들 모습에 바야르가 남긴 기술을 덧입히며, 존재 자체로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들이 ‘그곳에 있었음’을 감각할 수 있게 한다.


《수프 같은 것》 전시 전경(캡션 서울, 2025) ©캡션 서울

한편, 2025년 캡션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수프 같은 것》에서 황예지는 루마니아 출신 작가 이글라야 페터라니의 소설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에서 출발한 작업들을 소개했다. 전시는 폴렌타와 유동식, 국처럼 익숙한 음식의 회한에서 출발해, 작가가 수집해온 감정과 기록들, 그리고 한 여성 작가의 흔적을 따라간다.


《수프 같은 것》 전시 전경(캡션 서울, 2025) ©캡션 서울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스위스 취리히로 향해 페터라니의 묘역에 직접 찾아가고, 스위스 문학 보관소에서 그녀의 사진과 미공개 원고들을 열람했다. 이러한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포착한 이미지들과, 그 앞뒤에 쌓인 사유들을 기록하며, 한 여성 예술가의 자취와 정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이어 썼다.


《수프 같은 것》 전시 전경(캡션 서울, 2025) ©캡션 서울

전시는 일상과 여행의 파편들, 잔존하여 걸러진 장면들, 음식과 글쓰기의 흔적을 모아 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여성적 행위’라는 이유로 사소하게 취급되어온 것들(요리, 돌봄, 기록, 자기고백)을 전유하고, 이를 저항적 도구로 옮긴다.
 
사진과 텍스트, 음식과 아카이브가 연결되는 《수프 같은 것》에서 작가는 ‘애도하기’의 연습 과정과, 보잘것없이 여겨졌던—그러나 결코 사소하지 않은—역사의 방향을 비틀어보는 사유와 실천을 펼쳐 보였다.


황예지, ‘부족한 별자리’ 연작, 2023 ©황예지

이렇듯 황예지는 사진과 글이라는 매체를 오가며, 사회의 앵글로부터 빗겨 나 있지만 계속해서 각자만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존재들을 담아 낸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적당한 온기와 거리의 사랑과 믿음, 환대의 감각으로 서로를 엮으며, 어떠한 조건 없이 연대할 수 있는 작고 안락한 공간을 마련한다.

 "사진과 작업으로 확언이나 확증하기를 삼가고 저-피사체-관객들이 걸어 다닐 공간을 확보하고 유예하고 싶었어요."   (황예지,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황예지 작가 ©위즈덤하우스

황예지는 계원예술대학교 사진예술학과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수프 같은 것》(캡션 서울, 서울, 2025), 《부족한 별자리》(안팎스페이스, 서울, 2023), 《마고》(d/p,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녹색섬광》(두산갤러리, 서울, 2025), 《흑백논리》(뮤지엄헤드, 서울, 2024), 《우리가, 바다》(경기도미술관, 안산, 2024), 《춤추는 낱말》(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2), 《Skyline Forms On Earthline》(두산갤러리, 서울, 2022), 서울사진축제 《보고싶어서》(북서울미술관, 서울,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황예지는 사진집 『Mixer Bowl』과 『절기Season』를 출간했으며, 에세이집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바다 출판사)과 『아릿한 포옹』(아침달)을 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