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자(b. 1995)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한다. 그의 작업은 고정된 하나의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미지 속에 스며 있는 미묘한 움직임과 생동감이 나타난다.
 
작가는 고정된 프레임 너머에서 시각적 경험이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고 확장되는 순간을 통해 사진이 다성적인 감각을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김유자, 〈꿈자국〉, 2021, 피그먼트 프린트, 55x44cm ©김유자

김유자는 손상된 필름에 의해 사라진 대상, 자고 난 후 몸에 남은 흔적, 인물의 정지와 떨림 등 불명료하게 감지되는 순간들에 주목한다. 이를 담아낸 그의 사진은 인물이 숨을 참거나 내뱉는 찰나, 고요함 속에서 들려오는 기척, 또는 무언가 전환되는 듯한 긴장감으로 관객에게 다가오고, 이러한 감각은 점차 ‘보이는 것’만큼 선명해 진다.


김유자, 〈목련의 털〉, 2021, 피그먼트 프린트, 84x56cm ©김유자

2021년, 김유자는 사진과 영상을 주 매체로 다루는 작가 박정연, 홍영주와 함께 창작자 그룹 ORB를 결성하며, 신체 내외부를 떠돌며 예기치 않는 흔적을 남기는 빈칸들에 대한 각자의 탐구를 전개했다. 유령과도 같은 빈칸의 존재를 표면화하는 이들의 탐구는 피부에서 시작하여 신체 감각 내외부로 확장하고 이후 신체가 지각하지 못하는 풍경, 즉 기계가 포착한 이미지들로 느슨하게 연결된다.


김유자, 〈Coming Home〉, 2021, 피그먼트 프린트, 36x24cm, 《Frankie》 전시 전경(N/A, 2021) ©김유자

그 결과물로서 진행된 전시 《Frankie》(N/A, 2021)에서 김유자는 개인적인 악몽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자고 일어났을 때 몸에 생긴 흔적과 달라진 사물의 온도를 포착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신체 내외부에 발생한 위화감을 가시화하는 그의 작업은 빈칸이 지나간 자리에 새겨진 촉각적 심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정적 속의 떨림을 사진으로 구현한다.
 
여기서 악몽의 감각에서 촉발된 대상은 서늘한 긴장감을 지닌 동시에 온기를 머금은 존재로 전환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김유자, 〈그 시간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2021, 피그먼트 프린트, 16x24cm ©김유자

이와 더불어, 2021년부터 김유자는 ‘Cusp’ 연작을 1, 2부에 걸쳐 전개해 왔다. 작품의 제목인 ‘Cusp’는 첨점의 영문명으로, 전자, 수학, 해양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하는 낱말이다. 작가는 한 단어가 이처럼 많은 의미를 지니고 보폭을 넓히는 모습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작가는 해양 분야에서 ‘Cusp’가 “파도의 활동으로 해안의 물질들이 바다 쪽으로 돌출되게 형성되는 굴곡이 심한 연속체의 한 부분”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에 주목했다.
 
충돌의 예측 불가능한 성질로 인해 존재하던 것들이 부딪혀 새로운 굴곡을 만들어 내는 순간에 착안하여, 작가는 사진에 충돌의 감각이 일어날 때, 다시 말해 본 것을 더는 볼 수 없거나 몸에 익은 감각이 파괴되는 순간 이 사진을 다시 쓰지 못하는 것으로 분류하거나 현상을 부정하는 대신 유실의 의미를 더듬기 시작했다.


김유자, 〈A cat〉, 2021, 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 60x40cm, 《2023 Anti-Freeze》 전시 전경(합정지구, 2023) ©김유자

그 첫 번째 작업인, ‘Cusp 1’(2021-2023) 연작은 선물로 받은 필름이 빛에 노출되어 피사체를 기록하지 못하는 경험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A cat〉(2021)은 길 위의 고양이를 촬영한 사진이었지만, 이를 담은 필름이 공항 엑스레이에 여러 번 노출된 까닭에 피사체인 고양이가 지워진 모습으로 현상되었다.
 
작가는 본 것을 더는 볼 수 없는 상황에 흥미를 가지며, 일 년간 이 손상된 필름들로 촬영을 이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지워지고 비워진 상황을 조명하는 작업이 일종의 ‘애도의 행위’와 같다는 의견을 들었고, 이후 유실의 단면을 남겨두는 동시에 무언가 채워지고 재생되는 순간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김유자는 이러한 충돌의 경험을 수제 한지의 불균질한 절단면과 거친 질감으로 표현하고, 사라진 고양이가 자유로이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액자 없이 제작했다.


김유자, 〈투명의 반복 D〉, 2024, 피그먼트 프린트, 알루미늄 프레임, 61.4x41.4x2.2cm ©김유자

‘Cusp 1’가 사라진 대상을 기점으로 유실과 재생에 주목하였다면, ‘Cusp 2’(2021-2024)는 정지와 떨림을 이야기한다. 김유자는 떨림의 감각을 신체로 구동하고자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을 여러 장 활용했다.
 
그간 동어 반복이나 부연 설명이 되지 않도록 최선의 한 장을 골라왔던 작가는, 이 작업에서 그 관성으로부터 벗어나 여러 장의 이미지를 통해 연속성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이때의 연속성은 단순히 동작이나 사건이 아닌 시점의 다양성으로 드러난다.


김유자, ‘Cusp 2’ 연작, 《Summerspace》 전시 전경(Hall 1, 2024) ©김유자

그리고 ‘Cusp 2’를 제작함에 있어서 작가는 “침잠한 세계가 잠시 깨어날 때의 소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삼으며, 그 순간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 고민했다. 그는 소리가 파동이라는 진동을 통해 전달되는 감각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이를 청각보다는 시각과 촉각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이에, 작가는 커지고 작아지는 소리, 높아지고 낮아지는 소리, 맺히고 퍼지는 소리,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소리 등 동작을 연상시키는 소리의 감각을 용지와 액자라는 기본적인 구성 내에서 표현할 방법을 탐색했다.  


김유자, 〈투명의 반복 E#〉, 2024, 피그먼트 프린트, 알루미늄 프레임, 61.4x41.4x2.2cm. 《Summerspace》 전시 전경(Hall 1, 2024) ©김유자

예를 들어, 다섯 점의 사진을 일정한 간격으로 놓되 사진의 크기, 용지의 종류, 액자의 두께를 달리하여 강도를 조절하거나, 인물이 등장하는 사진들은 오선지를 생각하며 간격과 높낮이를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하곤 하였다. 이때 음계를 붙인 사진의 제목은 작업 과정에서 작가가 소리를 참고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시스터 시티: 지도의 바깥》 전시 전경(스페이스 카다로그, 2023) ©김유자

그리고 2023년 스페이스 카다로그에서 열린 개인전 《시스터 시티: 지도의 바깥》은 우연히 길을 걷다 발견한 자매 도시의 역사를 시작으로, 자매 도시의 하위 개념인 우호 도시 관계의 두 도시, 대전과 가오슝을 탐험했던 경험을 배경으로 한다.
 
김유자는 대전과 가오슝을 여행하며 발견한 우연하고 우발적인 마주침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진들 중 어떤 것도 대전과 가오슝이라는 도시를 지시하는 고유한 기호로 기능하지 않는다.


《시스터 시티: 지도의 바깥》 전시 전경(스페이스 카다로그, 2023) ©김유자

이는 우리의 시선이 인덱스(index)를 좇아 고정된 이미지 안에 갇히거나 특정한 의미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는 작가의 의도와 맞닿아 있었다. 이러한 의도는 사진의 독점적 권위와 창작자의 우위를 주장하는 일인칭의 시점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소유하지 않는 비인칭 시점을 견지하는 지점에서도 도드라진다.
 
그로 인해 그의 작품 속에서 이미지는 단일한 의미에 고착되지 않으며, 관계는 친밀하지도 영속적이도 않다. 이들은 그저 우연히 작가와 마주쳐 시간과 공간의 한 좌표를 공분하며 무연한 관계로 맺어졌다 풀릴 뿐이다.


《시스터 시티: 지도의 바깥》 전시 전경(스페이스 카다로그, 2023) ©김유자

아울러, 작가는 두 도시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재현된 기호로 이루어진 지도를 통해 위치와 방향을 확인하기보다 경로를 이탈한 ‘걷기’를 통해 속도와 시간을 변주해 길을 만들어 가는 방식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지도에 기입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누락된 이름 모를 장소들을 제각각의 인상적인 이야기를 품은 화자의 자리에 재배치했다.
 
《시스터 시티: 지도의 바깥》을 이루고 있던 지도를 보지 않고 걸을 때 마주한 장면들과, 특정 공간과 인연이 있지만 시각적으로 그 연결이 흐릿해진 인물들은, 느슨한 연대 속에서 프레임에 포획되지 않는 ‘바깥’을 사유할 틈새를 만들어 낸다.


김유자, 《두산아트랩 전시 2025》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5) ©김유자

이처럼 김유자는 사진의 단일한 프레임 너머로 확장되는 감각적 순간들을 탐구하며, 이를 심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종이의 물성과 프레임의 변주, 공간에 조응하는 설치 방식 등을 고민해 왔다.
 
2025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두산아트랩 전시 2025》에서 김유자는 작품들을 공간 곳곳에 배치하여 유동적이고 일시적인 광장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 중, ‘밤 문자’(2024-2025) 연작은 전직 군인인 샤를 바비에르가 어두운 밤 전장에서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도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고안한 암호용 문자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의 상태를 조우할 때 생겨나는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는 것을 시도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연작과 동명인 작품 〈밤 문자〉(2024)는 사진을 통해 소리를 표현함으로써 바깥을 향해 안으로 오라 말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김유자, 〈밤 문자〉, 2024, 피그먼트 프린트, 180x120cm, 《두산아트랩 전시 2025》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5) ©김유자

김유자는 화면에 소리를 불러오고자 소리를 재생하는 대신 소환의 동작으로 화면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이에, 사진은 손을 사용해 휘파람을 부는 연주 기법(Hand Flute)을 포착하며, 그 이후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는 사유의 여백을 남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로 이루어진 느슨하고 일시적인 광장은 과거에 잃어버린 무언가, 혹은 새롭게 다가올 것이라 믿는 장면을 함께 상상하고 기다리도록 이끈다.


김유자, 〈아주 천천한 걸음〉, 2024, 피그먼트 프린트, 나무 프레임, 72x54cm ©김유자

이렇듯 김유자는 평면의 종이 위로 압축된 이미지 이면이 유도하는 상상력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감지된 것과 기억된 것 사이의 균열을 살피고, 채워진 것과 비어진 것 사이를 오가며, 그 경계에서 떠도는 존재와 부재의 감각을 카메라로 포착한다.
 
그의 사진은 언뜻 정지해 있는 고정된 이미지로 보이지만 자세히 볼수록 미세한 움직임이 표면 위로 일렁이는 듯한 미묘한 시각적 진동을 일으킨다. 이는 곧 시각에서 촉각으로, 나아가 청각적인 상상력으로 전이되고 확장되며, 우리의 기억 속에 새로운 잔상을 남긴다.

 "단일하게 여겨지던 감각이 크고 작은 충돌 속에서 전이되는 순간을 궁금해하고 또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유자, 비애티튜드 인터뷰 중) 


김유자 작가 ©캐논코리아

김유자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개인전으로는 《시스터 시티: 지도의 바깥》(스페이스 카다로그, 서울, 2023)가 있으며, 2인전으로는 《겨울눈》(공작새방, 서울, 2025), 《어둠이 오면 내가 찾아가리라》(합정지구, 서울, 2024)가 있다.
 
또한 작가는 《Fever State》(Roma Arte in Nuvola, 로마, 2025), 《두산아트랩 전시 2025》(두산갤러리, 서울, 2025), 《페리지 윈터쇼 2024》(페리지갤러리, 서울, 2024), 《2023 Anti-Freeze》(합정지구, 서울, 2023), 《Frankie》(N/A, 서울, 2021), 《2020 미래작가상 전시》(캐논 갤러리,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