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하(b. 1999)는 사라지거나 출입이 금지된 장소, 유실된 매체, 잊힌 기억의 파편을 수집해 비가시적인 시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 영상, 출판, 설치를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작가는 기억이 퇴색되고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을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김상하, 〈Missing Link〉, 2019-2024, 사진 ©김상하

초기의 작업에서 김상하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장소에 대한 흔적을 좇고자 했다. 예를 들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된 〈Missing Link〉 프로젝트는 1968년 여의도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폭파된 밤섬에 대한 기억을 추적한다.


김상하, 〈Missing Link〉, 2019-2024, 사진, 《2023 Anti-Freeze》 전시 전경(합정지구, 2023) ©김상하

이에 따라서, 작업은 서로 다른 시간대의 밤섬을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으로부터 출발한다.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졌던 과거의 밤섬은 폭발과 함께 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여의도 윤중로의 계단과 제방의 일부가 되었거나, 강물을 따라 어딘가로 떠밀려갔다.
 
이후 밤섬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잔해 위로 흙과 모래가 퇴적되며 수면 아래 잠긴 섬의 자리에 지금의 지형이 형성되었지만, 현재는 출입이 금지되어 박제로 남겨진 시공간이 되었다.


김상하, 〈Missing Link〉, 2019-2024, 사진 ©김상하

김상하는 4년에 걸쳐 밤섬에 거주했던 원주민 다섯 명을 찾아 그들의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대화를 나눴다. 작가는 노년이 된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록하며, 그들의 기억 속에서 묘사된 장소를 따라가 사라진 섬의 흔적을 좇고자 했다. 불확실한 기억으로 남은 단서들을 따라가며 현재의 시공간 위에서 보이지 않는 채 중첩된, 경험한 적 없는 시간을 상상하였다.


김상하, 『Missing Link』(2024), 55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104쪽의 사진집, 227x304mm. 디자인: Tank Press ©김상하

그 결과물로 제작된 작업은 할아버지가 사라지는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남겼던 메모와 사진을 바탕으로 다시 현재 남겨진 장소에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 그리고 그 여정의 장면을 오늘날 점차 사라져가는 매체인 아날로그 필름으로 담아내어 소멸에 대한 감각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와 동시에, 작가는 이들의 기억을 다시 하나의 책으로도 엮으며 점차 추상화되는 기억을 물질의 형태로 붙잡고자 하였다.


김상하, 〈memory lane〉, 2022, 찰흙, 부엽토, 버드나무씨앗과 뽕나무 씨앗일부, 프린트된 이미지로 제작, 가변크기, 단채널 영상, 4K ©김상하

그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또 다른 작업 〈memory lane〉(2022)은 〈Missing Link〉 프로젝트의 리서치 과정에서 만난 밤섬 이주민들과의 대화에서 출발하였다. 섬을 떠난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이주와 재이주를 겪어야 했던 그들의 삶을 통해, 작가는 이동과 기억이 얽힌 운명의 인상을 포착하고자 했다.
 
영상은 밤섬 이주민들의 기억에서 추출한 사물과 요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으로, 2022년 2월 6일, 단 하루 동안 한강과 전시장에서 송출되었다.


김상하, 〈게더〉, 2024, 단채널 비디오 ©김상하

한편, 2024년에 발표한 영상 작업 〈게더〉는 밤섬에 살았던 세 명의 노인을 조명한다. 영상은 오래된 사진첩을 함께 펼치며 이루어지는 회상의 대화로 전개된다. 과거 밤섬에 거주했던 세 명의 노인이 현재의 단상을 보이스오버로 전하는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는 정지한 듯 사라져가는 풍경을 담아낸다.


김상하, 〈게더〉 (티저 영상), 2024, 단채널 비디오 ©김상하

같은 섬에서 함께 살았고, 같은 순간 그곳을 떠났다는 기묘한 과거로 얽힌 이들의 기억은 각자의 현실에 의해 서로 다른 조각으로 흩어져, 강가 여기저기에 남겨진 흐릿한 파편처럼 떠다닌다. 그리고 이 오래된 이야기는 김상하가 섬을 기억하는 노인들을 찾아가며 다시 연장된다.


김상하, 〈Temper〉, 2023, 《나프탈렌 캔디》 전시 전경(00의 00, 2023) ©김상하

한편, 2023년에 진행된 프로젝트 〈Temper〉는 서버 종료로 사라질 뻔한 김상하 어머니의 싸이월드 속 사진을 복구하며 시작된 작업이다. 작가는 사진 속 자신은 모르는 어머니의 기억을 보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이 사진을 허공을 떠도는 데이터에서 인화된 사진으로 정착시켰다.


김상하, 〈Temper〉, 2023, 《나프탈렌 캔디》 전시 전경(00의 00, 2023) ©김상하

그러나 이때 그는 소중하게 복구된 사진 데이터를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조된 감열식 프린터를 사용해 시간과 열에 의해 이미지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처럼 작가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이미지를 지웠다가 드러내기를 반복하며, 엄마의 사진을 향한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헤아려 보려 했다.


《또 다른 잿더미》 전시 전경(PS CENTER, 2025) ©PS CENTER

이렇듯 사라진 또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단서로 그 지나간 시간을 재구성하고자 했던 김상하는, 최근에는 필름이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는 옛 무성영화에 대한 소문을 좇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 PS CENTER에서 열린 개인전 《또 다른 잿더미》에서 김상하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소각되었다고 알려진 유실 필름에 대한 증언과 소문을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우리 앞에 남겨진 텅 빈 아카이브를 보며, 사라진 대상이 시대적 욕망 속에서 어떻게 ‘또 다른 진실’의 형태로 잔존하는지 탐색하고자 했다.


김상하, 〈그 그림자를 죽이거나, 혹은 따르거나〉, 2025, 단채널 비디오, 컬러와 흑백, 스테레오, 사운드, 25분 ©김상하

영상 작업 〈그 그림자를 죽이거나, 혹은 따르거나〉(2025)에서 작가는 영화 〈아리랑〉(1926)을 둘러싼 소문을 따라간다. 〈아리랑〉은 당시 큰 성공을 거둔 민족 영화로 회자되지만, 원본 필름이 소실되어 현재는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모순을 지닌다.
 
영상에서 목소리가 지워진 무성영화 속 배우, 영화 속 살인 액션을 반복적으로 따라하는 퍼포머, 두 얼굴 위로 드리우는 말(소리)과 글(자막)은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던 소문을 한곳에 투사된 여러 겹의 레이어로 엮어낸다.


김상하, 〈그 그림자를 죽이거나, 혹은 따르거나〉, 2025, 단채널 비디오, 컬러와 흑백, 스테레오, 사운드, 25분 ©페리지갤러리

아울러, 작업은 기존 글자를 지운 후 그 위에 새로운 내용을 덧입히는 기법인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의 형식을 따르며, 영화의 실체보다는 또 다른 소문-이야기가 될 기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작가는 〈아리랑〉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공모하기 위한 배우 중 한 명을 관객으로 전치시킨다.
 
이는 영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존재감 있는 등장인물인 거울 이미지로 드러난다. 관객과 배우 사이의 관계는 영화가 상영되던 극장 안 변사와 순사의 대립, 그리고 피식민지 민족이 내재화한 정체성의 분열과 맞물리며 복층적 구조로 확장된다.


김상하, 〈그 그림자를 죽이거나, 혹은 따르거나〉, 2025, 단채널 비디오, 컬러와 흑백, 스테레오, 사운드, 25분 ©페리지갤러리

이처럼 김상하의 작업은 주변부를 맴돌며 예정된 망각으로 향하는, 보이는 것보다 잠긴 것이 많은 시간에서 출발한다. 불완전하고 흐릿한 기억들을 이 여정의 단서로 삼으며, 작가는 유실되어 가는 기억들을 현재의 시공간 위에 중첩시키고 새로이 재구성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절된 시간을 현재와 미래로 연장시키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기억이 퇴색되고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을 다층적으로 드러내며,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 기억의 파편들이 어떻게 잔존하고 변형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붙잡으려는 마음, 지키려는 마음, 보려고 하는 마음들이 작업의 큰 주제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상하, 더미덤피이미지 인터뷰 중)


김상하 작가 ©2025 ARKO DAY

김상하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대학원에서 사진과 석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또 다른 잿더미》(PS CENTER, 서울, 2025), 《가는 꿈》(얼터사이드, 서울, 2024)가 있다.
 
또한 작가는 페리지 언폴드 2025 《Don’t be hasty》(페리지갤러리, 서울, 2025), 《지연된 리허설》(챔버, 서울, 2024), 《2023 Anti-Freeze》(합정지구, 서울, 2023), 《나프탈렌 캔디》(00의 00, 서울, 2023), 《뻐꾹! (cuckoo!)》(TINC,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상하는 2024년 동명의 작업을 책으로 엮은 결과물 『Missing Link』를 출간하였으며, 2025년 아르코데이의 ‘프레젠테이션’ 작가로 참여하며 주목을 받았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