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섬섬옥수〉, 2025,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2분 ©이은희

혁신적인 기술의 생산은 막대한 노동력뿐만 아니라 방대한 물질 자원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신체에 심각한 손상과 질병을 유발하는 유해 물질들이 발생하지만, 이러한 건강 문제는 종종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되거나, 젠더 및 사회적 불평등의 층위 속에서 침묵되고 은폐되어 왔다.

《클린룸, 릴링룸》은 서로 다른 시기의 노동자 질병 사례들을 한데 모아,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궤적을 추적한다. 전시는 이은희의 두 편의 영상 작품 〈섬섬옥수〉(2025)와 〈무색무취〉(2024)를 통해, ‘릴링룸’과 ‘클린룸’이라는 두 생산 환경을 사유한다. 릴링룸은 초기 산업 제조 환경을 가리키며, 고무와 섬유 생산 과정에서 이황화탄소와 같은 물질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심각한 신경계 및 신체적 손상을 초래했던 공간이다.

반면 클린룸은 정밀함과 청결함의 상징으로 찬양되는 오늘날의 전자산업 생산 환경을 지칭하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몸을 조용히 침식하는 독성 화학물질에 의존하고 있다. 수십 년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환경은 산업 발전이 반복적으로 인간의 대가 위에 구축되어 왔음을 드러낸다.


이은희, 〈무색무취〉,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5분 ©이은희

유해 물질로 인한 직업병의 역사는 산업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학물질, 방사선, 중금속, 유독 가스, 위험한 기계, 반복 노동은 지속적으로 노동자의 신체를 위험에 노출시켜 왔다. 석탄 광부들의 진폐증, 발광 시계판으로 중독된 ‘라듐 걸스’, 석면폐증에서부터 일본의 이타이이타이병, 한국의 원진레이온 사태, 만성적인 PFAS 노출 사례, 실리콘밸리 IBM의 유독 가스 사건, 대만 RCA 공장의 산업 폐기물 불법 투기까지—이 모든 것은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남겨진 고통스러운 흔적들이다. 반도체 산업 역시 이러한 길고 유독한 계보 위에 서 있다.

우리의 디지털 기기들이 가진 매끈한 표면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 그 안에는 어떤 피해와 침묵, 그리고 저항의 역사가 담겨 있는가? 이러한 연결을 추적함으로써, 전시는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 산업의 반복된 실패를 드러내는 동시에, 연대와 투쟁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당사자들의 힘을 조명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