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view of 《Dui Jip Ki / 뒤집기》, Esther Schipper, Berlin, 2023 © Esther Schipper

에스더쉬퍼는 한국 동시대 미술을 조망하는 전시 《뒤집기 (Dui Jip Ki)》를 서울과 베를린 갤러리에서 동시에 개최한다.

에스더쉬퍼 서울의 긴밀한 협력으로 큐레이팅한 《뒤집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다섯 세대를 아우르는 작가들과 다양한 매체에 걸친 작품세계를 한자리에 모은다. 이번 전시는 에스더쉬퍼 서울 개관 1주년을 앞두고 오래전부터 지속한 한국과의 인연을 되돌아보고 기념하기 위한 자리다.

참여 작가 8인(서울 전시는 7인)의 작품은 각각 한국 현대 미술의 특정한 시점이나 요소와 접점을 갖는다. 《뒤집기》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사회적, 정치적 이념에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고 남다른 개념적 접근 전략을 구사하고 전복된 정체성과 평행 역사를 다루거나 전통 기법과 물성을 뒤집고 새로 발견한다. 이는 기원, 성숙, 출현의 미학적 여정으로 읽어낼 수 있다.

전시명인 ‘뒤집기’는 특정 행위와 그에 따르는 연관성을 차용한 용어로,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세계와 연결된다. 안과 겉, 위와 밑을 뒤바꾸는 것, 일련의 사건을 되짚어 재정렬하거나 그 결과를 부정하는 행위를 뒤집기라고 한다. 간단히 부침개를 뒤집는다는 일상의 표현에도 적합하지만, 변심이나 반전의 국면을 탐구하는 정신세계를 뜻할 수도 있다. 민속 씨름에서 상대방의 샅바를 잡아 뒤로 넘겨 승리를 이끌어내는 기술을 뒤집기라 부르기도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문화 발전의 서사는 다분히 이분법적인 특징을 보여왔다. 한국의 사회정치적 근간과 한국 현대미술의 바탕은 남과 북, 사회적 현실주의(민중미술)와 추상주의(단색화) 등과 같은 양분화된 구도로 형성되어 왔다.


Exhibition view of 《Dui Jip Ki / 뒤집기》, Esther Schipper, Berlin, 2023 © Esther Schipper

《뒤집기》에서 선보이는 작가들은 회화와 조각이라는 전통적 매체의 틀 안에서 독창적이고 대안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발견한 이들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들을 네 개의 개념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1. ‘대안적 근원(Alternative Origins)’: 민중미술과 단색화라는 두 기성 화단을 벗어난 대안적 방식을 모색하는 작가 김홍주. 2. ‘변모하는 물질(Transformative materiality)’: 자연 또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작품에 적극 활용하는 작가 이배와 김택상. 3. ‘정체성의 전복(顚覆)(Subverted histories)’: 타의 또는 자의로 정체성을 소실하거나 감춘 경험이 있는 작가 진 마이어슨과 최하늘. 4. ‘뉴트로(New Retro)’: 전통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젊은 작가 손동현, 전현선, 김수연.

김홍주(b.1945)는 전후 시대 화풍의 대세를 이루었던 두 미술 사조를 벗어난 작가다. 김홍주는 퍼포먼스, 조각, 설치 등 작업의 물리적 및 개념적 탐구 끝에 회화로 회귀했다. 이번 전시에는 개념적 제스처이자 장인 정신을 기리는 수행적 회화 연작을 선보인다.

김택상(b.1958)과 이배(b.1956)는 한국 현대미술의 2세대 작가다. 작업 과정에 원형적이고 변혁적인 개념을 접목해 전후 단색화와 동시대 미술을 연결하는 교두보를 놓는다. 김택상은 물, 공기, 천, 물감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채도 높은 작품을 제작한다. 완성된 작품은 개념적으로 정교하고 복잡한 작업 방식을 노출하지 않으며, 그 끝에는 순수하고 자율적인 형태를 이룬다. 이배는 나무, 불, 한지(닥종이)를 사용하여 한국 민속 문화와 공예의 정신과 전통을 조각,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작품으로 풀어낸다. ‘숯’은 이배 작품세계의 핵심적인 변혁의 소재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실향 입양인’으로서 미국에서 성장한 경험은 진 마이어슨(b. 1972) 작품세계의 핵심이다. 위기/위태, 치유/회복, 쇄신/재생에 대한 비평적 담론으로부터 비롯되는 진 마이어슨의 회화는 추상과 구상의 회화적 언어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Front: Haneyl Choi, Physically: vibe, humor, hormone, pheromone, stink, body language, 2023, Expandable foam, silicone, urethane, urea resin, acrylic, styrofoam, steel frame, bronze pipe, 110 x 90 x 230 cm (excluding intestines) / Back: Presentation of works by Donghyun Son, Exhibition view of 《Dui Jip Ki / 뒤집기》, Esther Schipper, Berlin, 2023 © Esther Schipper

최하늘(b.1991)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활동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조각이라는 매체와 퀴어 아이덴티티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선구적인 작가다. 주로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s)나 레디메이드 오브제(ready-made), 인쇄물, 플라스틱, 암호 또는 기호, 디지털 및 비디오 요소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한다. 최하늘은 작품을 통해 조각가로서 갖는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재정의한다.

1980-90년대생 작가 중 화단과 평단은 물론 컬렉터들의 인정 또한 누리는 여성 작가도 다수다. 전현선과 김수연은 남성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여성 작가의 입지를 다지는 데 앞장서 왔다. 한국의 전통사상과 소재를 남다르게 접근하고 다룬다는 점에서 손동현 작가와 접점이 있다.

전현선(b.1989)은 특징적인 색채 팔레트가 돋보이는 특유의 화법을 사용한다. 작가의 형상들은 기하학적 표상과 은유의 풍경 사이를 부유한다. 화면 속 기하학적 오브제는 작품을 설치하는 3차원적 방식으로 종종 화면 밖에서도 나타난다.

김수연(b.1986)은 다양한 개념적 전략을 화면에 켜켜이 축적한다. 전시에 선보이는 신작에서는 붓을 매달고 바람에 따라 움직이게 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법론을 구상했다.
손동현(b.1980)은 서로 다른 형식과 개념들을 의도적으로 조합하고 절충해 독특한 작품을 제작한다. 손동현은 동서양의 미학적 감성을 창의적으로 넘나들며 필묵 문화의 대표적인 산수화를 해체하고 재조합하기도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