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 전시 전경(갤러리175, 2022) ©홍은주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 (나의 재를 너의 재와 섞고 싶어)”는 막 결혼을 마친 신부가 쓴 중국 고시(古 詩)의 한 구절이다.[1] 신부는 뼈와 살이 타들어 재가 되어 신랑의 재와 섞이는 먼 미래를 상상하며 영원한 사랑을 다짐한다. 신부의 다짐은 섞인 잿더미 속에서 여전히 유효할까? 그러나 이 전시에서 “재를 섞는다”는 구절은 변함없는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종류의 몸- 이 도시에 서있는 건물들, 비행기, 기계, 동물, 곤충 -들이 재가 되어 날아가버리는 장면을 연상해보기로 한다. 저들은 죽음 이전에 다른 이들과 재를 섞을 수 있을까? 가상의 조건을 내걸지 않고도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가?

인간의 언어, 동물의 언어, 기계의 언어는 전시 공간에서 짐짓 서로를 흉내 내고, 조소를 던지기도 하며 세계에 균열을 내기를 꿈꾼다. 불에 타지 않고도 이미 저들은 재를 나눈다. 3채널 영상 설치 중 처음으로 관객을 맞이하는 영상은 인간이 마치 열매가 나무에 열리듯 아무렇지 않게 탄생하는 세계의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의 무심한 듯한 대화는 중심과 주변이 없는 비선형적 친족관계를 암시한다. 부모가 아닌 언젠가 교체될 수도 있는 보호자들에게 길러지는 이들의 배꼽은 하나가 아니다.

영상과 짝을 이루는 다른 두 영상 안에서는 두명의 댄서가 대벌레와 춤을 추고 있다. 대벌레의 움직임은 살아있는 나뭇가지 같기도, 갓 태어난 새끼 같기도, 어설픈 기계 같기도 하다. 대벌레는 나뭇가지를 의태 하며 몸을 숨기는 동시에 암컷은 수컷 없이도 무성 생식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알을 품은 채로 새에게 먹혀 새의 배설물을 통해 번식을 하기도 한다. 대벌레의 더듬거리는 움직임들은 당연한 듯 이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종의 구분, 먹이사슬과 생존, 재생산과 번영, 성별, 개별적 몸의 연장과 단절. 두명의 댄서와 두 대벌레는 섬세하면서도 투박하게 몸을 맞대며 줄다리기를 하듯 서로의 무게와 균형을 맞추어 본다.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 전시 전경(갤러리175, 2022) ©홍은주

영상 앞 전시장의 바닥에는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커다란 이미지가 놓여있다. 이 이미지는 인공지능과 작가의 의식 사이의 교묘한 협업의 결과이다. 경계가 애매하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색채들의 추상 안에서 좀 더 뚜렷한 형상들이 고개를 든다. 곤충의 마디, 포유류의 털, 얼굴의 구멍, 세포의 막의 모양과 얼추 비슷해 보이면서도 명명할 수 없는 형상들이다. 유일하게 표상적인 이미지는 숫자가 쓰여진 손가락의 이미지인데, 이는 협업과정에 관한 결정적 단서이다. 텍스트기반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이 콜라쥬는 인공지능이 단어에 담긴 표면적인 ‘특성’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작동 원리에 내재되어 있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부식시킨다.

마지막으로 전시장 입구의 욕조는 기이한 피부를 연상시키는 무언가를 담고 있는데, 몸덩어리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져버린 모습 같기도 하다. 욕조 밑에는 파티가 끝난 뒤 미처 정돈되지 못한듯한, 마치 가상세계의 노이즈 또는 재 같아보이는 가루가 흩어져 있다. 익숙한 행위주체자들의 경계 밖에 귀를 연다는 것은 우리가 재를 섞는 첫 걸음 일지도 모른다. 마침 출입문 옆에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경계를 알 수 없는 “...From and of all the languages that were spoken and written...” 이라는 구문의 타원이 걸려있다.


서문 : 홍은주, 김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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