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영(b. 1988)은 일상에서 늘 마주치지만 사소하기 때문에 금방 스쳐 지나가 버리거나 익숙해지기 쉬운 것들을 소재로 삼아 설치 작업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것들을 일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예기치 못한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조호영, 〈너가 전하는 무게〉, 2020, 지시저울, 움직이는 검은 비닐봉투, 15x25x35cm ©챕터투

조호영의 작업은 일상적인 대상들을 관찰하는 일에서 출발하여 그 대상과 개인의 관계성, 대상의 실제와 관념적 이미지의 간극을 탐구한다. 작가는 그러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변화와 차이의 흐름을 드러내기 위해 관객과 작품이 서로 반응하면서 새로운 인식과 경험이 만들어지는 설치 작업을 구상해 왔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도구’ 또는 ‘촉매’라고 말한다. 그가 예술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는 작품 자체가 아니라 관객이 능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호영, 〈60과 120 사이〉, 2017-2019, 12개의 연결된 의자, 철, 가변설치 ©조호영

예를 들어, 대표작 중 하나인 〈60과 120 사이〉(2017-2019)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에 대해 다룬다. 이 작업은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 모여 있을 때 각자 본능적으로 자신만의 ‘사적 공간’을 유지하고자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는 행동을 관찰한 데에서 출발한다.
 
제목에 쓰인 숫자 ‘60’과 ‘120’은 사적 공간에 대한 평균적인 거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에 관련된 심리 연구에 따르면, 친밀한 사람의 경우 60cm보다 가까워져도 불편하지 않지만, 적당히 안면이 있는 사람은 60~90cm, 더 낯선 사람은 100~120cm 정도의 거리를 무의식적으로 확보하려 한다.

조호영, 〈60과 120 사이〉, 2017-2019, 12개의 연결된 의자, 철, 가변설치 ©챕터투

이에 착안하여, 조호영은 이러한 60~120cm 사이라는 사적 공간의 거리감을 작업에 가져왔다. 작가는 그가 지정한 특정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의자를 제작했다. 지그재그로 연결된 의자에 앉은 관객들은 작가가 정한 거리 안에서 상대를 관찰하고, 거리를 좁히거나 넓힐 수 있었다.
 
〈60과 120 사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사적 공간이라 부르는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직접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평소에는 너무 익숙해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감각의 변화를 환기시키는 촉매가 된다.


조호영, 〈한 바퀴의 상대속도〉, 2019, 두 개의 외발 자전거와 레일 프레임, 50x70x160cm ©조호영

〈60과 120 사이〉가 다수의 관계 안에서의 심리적 거리를 다뤘다면, 2019년도 작업인 〈한 바퀴의 상대속도〉에서의 거리감은 두 사람 간의 관계로 좁혀진다. 이 작업은 외발 자전거의 바퀴를 이용하여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가거나 뒤로 물러날 수 있게 만들어짐에 따라, 두 명의 관객 간 심리적 거리의 운동을 시각화 한다.


조호영, 〈행-온! 2〉, 2017-2019, 실리콘, 4x9.5cm ©조호영

한편, 또 다른 대표작 ‘행-온! (Hang-On!)’(2017-) 시리즈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브제인 행거를 낯설게 재구성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일반적으로 견고하고 단단한 소재를 사용하는 행거와는 달리, 이 시리즈에서는 실리콘과 같이 부드럽고 유연한 소재를 사용하여 본래의 기능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킨다.


조호영, 〈행-온! 3〉, 2022, 실리콘, 35x90cm ©챕터투

이러한 재질적 전환은 사용자가 행거를 다룰 때 더욱 신중하고 주의 깊은 태도를 유도하며, 오브제와 사용자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과 상호작용을 만들어 낸다. 이로써 조호영의 작업은 기능과 형태, 사용성의 의미, 전시와 일상 사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사물과 인간 사이의 감각적 관계를 새롭게 탐색한다. 


조호영, 〈Stand Still〉, 2020, 컨베이어 시스템, 35cm 공, 50x200x100cm ©챕터투

한편, 2020년도 작업인 〈Stand Still〉은 사물 간의 물리적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사선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끊임없이 구르고 있는 쇠공으로 구성된 이 작업은 물리적으로 모터의 중력과 쇠공의 중력이 정확히 상쇄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상반된 물리적 방향성이 서로 끊임없이 부딪히며 그 위치와 움직임이 계속해서 재설정되고 있는 현재 진행중인 상태를 역동적으로 드러낸다.


조호영, 〈무빙 워크〉, 2023, 혼합매체, 가변설치 ©챕터투

나아가 2023년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개인전 《입체경》에서 조호영은 일상적 경험의 대상과 그 행위 구조를 해체하고, 이를 살짝 비틀어 일종의 무대 장치를 연출하였다.
 
관객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유도하는 각 작업 장치들은 대상의 실체를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프리즘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기존의 지각 양태를 다양한 파장의 레이어로 확산시켰다.


조호영, 〈무빙 워크〉, 2023, 혼합매체, 가변설치 ©챕터투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장치 환경을 온몸으로 감각할 때 의식 아래 깊숙이 가라앉은 습관적 행동과 움직임의 관성이 소환되는 동시에, 예측과 다른 경험 속에서 그에 대한 자각의 순간을 열리게 한 것이다.
 
이를테면, 〈무빙 워크〉(2023)는 실제 무빙 워크의 재료와 형태를 재해석하여 구성한 총길이가 약 10m에 이르는 구조물이다. 실제로 걸어볼 수 있도록 제작된 본 작품은 기계 장치에 길들여진 신체 감각을 의식적으로 다시 관찰해 볼 수 있도록 관객을 끌어들인다.


조호영, 〈한 뙈기의 땅: 조각난 지면들〉, 2023, 고무공 2500개, 아크릴, 가변 설치 ©탈영역우정국

한편, 수백 개의 고무공 위에 놓인 반투명한 바닥 조각들로 이루어진 〈한 뙈기의 땅: 조각난 지면들〉(2023)은 관객의 체중과 움직임에 반응한다. 평소 견고하고 단단한 땅 위를 걷는 경험과는 달리, 이 지면 위를 걸을 때는 몸이 휘청거림을 느끼는 동시에 그에 따라 함께 진동하는 작은 공들과 조각들을 관찰하게 된다.
 
이는 곧 나의 움직임이 만들어 낸 감각인지 아니면 땅 아래의 수많은 공들이 나의 무게를 지탱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모여 나를 뒤흔든 것인지 모호해지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흔들리는 땅의 표면을 바라보며, 신체와 사물이 맺고 있는 물리적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조호영,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 전시 전경(백남준아트센터, 2023) ©백남준아트센터

같은 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에 참여하며 조호영은 〈한 뙈기의 땅〉 작업을 보다 확장된 감각의 장으로서 제시하였다. 작가는 전시장 바닥을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설치 구조물로 채워 넣으며, 그 바닥 위에 올라선 관객으로 하여금 수직, 수평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게 하였다.
 
이때 관객은 그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아갈 때 평소 사용하지 않았던 신체의 감각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관객이 움직이는 방향이 바닥의 움직이는 힘과 합해 균형을 이룰 때,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 면적이 된다.


조호영, 〈한 뙈기의 땅〉, 2022, 혼합재료, 가변크기 ©챕터투

이 작품은 운동 에너지의 평형상태를 이루는 관계가 마치 계속해서 항상성을 유지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물리적 에너지의 평형상태를 이루는 다양한 관계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이 관계를 맺는 과정과도 같다고 말한다. 생명을 위한 항상성이든 사회적 관계든 우리는 현상태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다각적인 방향에서 지속적인 에너지를 투입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호영, 〈식물을 위한 변론 : 아모에니타스〉, 2024, 혼합재료, 가변크기 ©챕터투

이렇듯 조호영은 사물 또는 사람 간의 관계와 이를 지각하는 신체의 감각 작용을 이용하여 심리적, 물리적 거리의 균형을 탐구하고, 작업을 통해 관객이 ‘전환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왔다. 일상의 물건을 변형하고 이미 학습된 경험과 인지의 과정을 벗어나는 설치 환경을 만들어 그 안으로 관객을 초대함으로써, 현실의 수면 아래 존재하는 긴장된 힘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든다.
 
조호영의 작업 장치를 통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 경험은 대상과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몸과 움직임을 새롭게 자각하고 감각할 수 있는 순간으로 이끈다.

 ”나의 작업은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잊히기 쉽거나 사소하기 때문에 쉬이 발견하기 어려운 대상들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조호영, 작가노트) 


장한나 작가 ©구하우스 미술관

조호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입체경》(탈영역우정국, 서울, 2023), 《N번째 종소리》(스페이스 홤, 서울, 2022), 《[알림]물도 천천히 씹어먹듯이 마시면 좋습니다》(탈영역우정국, 서울,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반복의 기록》(챕터투, 서울, 2025),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23), 《이상한 고리: 마르셀을 위하여》(성북예술창작터, 서울, 2022), 《ZER01NE DAY 2021: Playground》(온라인, 2021), 《Rundgang》(Universität Linz, 린츠, 오스트리아, 2017)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조호영은 2018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및 제로원 크리에이터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