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연서(b. 1997)는 드로잉, 설치, 텍스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죽음과 상실, 치유와 애도를 위한 예술적 탐구를 진행해 왔다. 작가는 몸과 연결된 삶 그리고 끊어진 삶의 주변을 맴돌며, 예술을 통해 이를 다시 연결하고 돌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를 통해 “트라우마와 사랑 그리고 창조성이 서로 연결된 신경망에서 가장 멋진 거짓말을 구조해내는 작업”을 진행한다.


차연서, 〈Juicy Mosquito〉, 2020, 라이브 퍼포먼스 ©차연서

차연서의 작업은 가장 가까운 관계 중 하나인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2021년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을 겪게 된 이후, 그 경험들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작업들을 전개해 나갔다.


차연서, 〈3 Households 집을 지키는 사람들〉, 2021, Interactive random fiction on pc ©차연서

예를 들어, 2021년 아트센터 나비 창의인재동반사업을 통해 제작한 〈3 Households 집을 지키는 사람들〉은 PC, 웹 및 대형 프로젝션을 통해 디스플레이 되고 플레이 또한 가능한 아트 게임 프로젝트이다.
 
이 작업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안에서 주로 생활하며 자신이 속한 가장 가까운 관계인 엄마와 여자친구,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세 사람의 경험, 역할, 진로, 성장 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에서 출발했다.
 
아울러, 작업을 제작하던 중 아버지의 죽음을 겪게 된 작가는, 〈3 Households 집을 지키는 사람들〉을 통해 피해와 가해, 트라우마, 죽음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한다.


차연서, 〈3 Households 집을 지키는 사람들〉, 2021, Interactive random fiction on pc ©차연서

〈3 Households 집을 지키는 사람들〉는 세 여성 간의 관계에서 출발해, 가상의 가족 단위 혹은 하나의 신체 구조를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이다. 영상은 트라우마 치료 및 예방을 위한 임상적 방법론, ‘내적가족체계’ 및 ‘EMDR’ 기법에서 착안해 구성한 플레이 시스템 안에서 레즈비언 실천, 친족 성폭력, 양자 에너지, 죽음 명상 등에 관한 인용문들이 촘촘히 직조된다.
 
플레이어는 프랙탈 구조를 닮은 네트워크와 다중 시선으로 확장되는 환경을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불안 기억을 다루기 위한 양측성 자극을 수행하게 된다.


차연서, 〈3 Households 집을 지키는 사람들〉, 2021, Interactive random fiction on pc ©차연서

3인의 공동체로부터 출발한 세 겹의 차원은 이분법이 불효하며, 질서 정연한 카오스처럼 펼쳐진다. 각 스테이지들은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가족 관계, 심리적 화상, 돌연적 사고 그리고 장례와 추모에 겨냥되어 있다. 이러한 지옥같은 천국 혹은 천국같은 지옥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몇 차례 맴돌다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차연서, 〈모스키토라바쥬스〉, 2022, 라이브 퍼포먼스 ©차연서

한편, 차연서의 작업에서 주요한 축 중 하나인 라이브 퍼포먼스는 그 매체적 속성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연결되어 나타난다. 작가는 라이브 퍼포먼스라는 작업은 태어나는 그날 죽음을 맞기 때문에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공연이 죽은 날부터 끈질기게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차연서, 〈모스키토라바쥬스〉, 2022, 라이브 퍼포먼스 ©차연서

2022년 진행된 라이브 퍼포먼스 작업 〈모스키토라바쥬스〉는 ‘여느 날 여느 아침을, 죽어서 맞는다는 거, 죽은 여자로 맞는다는 거’라는 김언희 시인의 시구에서 출발한다. 차연서는 이 시구로부터 이 여자는 진짜 해방된 것이 아니라 죽어서 해방된 것이며, 그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특별한 상황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작가는 “아침이라는 어떠한 숭고한 시각과 같은 존재와 마치 BDSM 플레이처럼 약속을 정하고 맞는, 타격 당하는, 폭력이나 모욕을 기꺼이 기브받는, 그런 이미지”를 상상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서 작가는 이러한 “혼수상태의 여자들은 무슨 노래를 하고 무슨 동작을 하고 무슨 몸을 갖고 있을까?”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작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차연서, 〈모스키토라바쥬스〉, 2022, 라이브 퍼포먼스 ©차연서

차연서는 다양한 레이어의 마취된/진정된/잠든 신체들을 무대 위로 올렸다. 각각의 퍼포머들은 “유충(larva)”으로서 초대되었으며, 작가와의 사전 미팅을 통해 각자만의 역할이 부여되었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그들의 트라우마나 성적 취향과 같은 내밀한 ‘비밀’을 먼저 끄집어 냈다.
 
자신의 취약한 패를 보여주고 상대와 빠르게 연결되는 다소 공격적인 방법을 통해, 작가는 묻어두었거나 잊었거나 말할 수 없었던 비밀과 고통들을 꺼낼 수 있는 촉매제로서의 공연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공연 속에서 각각의 “유충”들은 반짝거리는 신경망처럼 개개의 이유를 갖고 연결되어 “소진된 채 살아있는 몸과 마음, 그리고 에너지를 위한 ‘조치’”가 된다.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전시 전경(SAPY, 2024) ©차연서

한편, 2023년부터 차연서는 닥종이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닥종이는 생전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 차동하의 작고 전 마지막 시리즈 ‘축제’(2006-2017)의 재료로, 차연서는 아버지 죽음 이후 남겨진 닥종이 무더기를 처리하기 위한 방도로 그의 작업에 가져오게 되었다.
 
차연서는 아버지가 제작해 놓았던 채색된 닥종이를 새롭게 오려내고 직조하며 “이후에도 남아있는 것”들을 다시 자신만의 태도로 응시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예를 들어, 2024년 개인전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에서 차연서는 아버지가 남긴 유품인 채색된 닥종이들을 불러와 주인 없는 몸, 벌레, 시적 언어들을 자르고 그리며 그들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전시 전경(SAPY, 2024) ©차연서

단색으로 채색된 색면이 수직, 수평 격자 구조 안에서 균형을 찾아 배치되는 차동하의 ‘축제’ 시리즈는 그의 딸인 차연서의 시선을 관통해 관객 앞에 재등장했다. 남겨진 닥종이를 가위로 잘라내는 기법을 사용해 만들어진 동명의 평면 시리즈 ‘축제’(2023-)는 일종의 ‘종이 오리기(Paper Cut-out)’이자 ‘훼손하기’로 볼 수 있는 형식을 통해 돌연사한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정서가 반영된다.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전시 전경(SAPY, 2024) ©차연서

그리고 작가는 법의학 책 도판에 실려 있는 죽은 몸, 습하고 어두운 곳에 말라붙은 돈벌레들 그리고 시어 등을 주요 심상으로 삼으며 모양을 만들고 그리기를 반복함으로써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그 중에서 법의학 책의 도판으로 등장하는 몸들은 무연고의 몸이자, 공익을 위해 도용되고 전시된 몸이다.
 
작가는 아무도 경조 행사를 치러주지 않는 이 몸들과 하나의 지면을 밟기를 시도하며, 이들과 함께 영가들의 목욕재계를 이끄는 의식 ‘관욕’을 행한다. 이는 그들을 위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몸들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사건의 현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전시 전경(SAPY, 2024) ©차연서

아울러, 전시장에서는 남겨진 아버지의 정원에서 레코딩한 소리를 수집하고 재구성한 사운드 작업이 매 회차마다 한 번씩 재생되며 그곳에서 죽고 태어난 모든 비인간 존재들의 소리 안으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작가는 이러한 ‘축제’가 자신에게 죽음에 대해서, 사체에 대해서,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기 위한 무언가를 통제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축제’를 수없이 직면할 때, 그 마비된 시간 속에서는 역설적인 돌봄의 관계가 생겨난다고 보며, 이는 어떠한 간섭이나 격려도 없이 이러한 기담 혹은 기행을 공공의 자리에서 모두에게 말할 수 있도록 그저 바라볼 뿐이라고 설명한다.  


《거상 거상 거상거》 전시 전경(N/A, 2025) ©N/A

관욕이라는 의례를 거치고 난 이후의 최근 ‘축제’ 시리즈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2025년 N/A에서 열린 개인전 《거상 거상 거상거》를 통해 선보인 그의 신작은 작가의 스튜디오이기도 한 남양주의 정원을 또 하나의 심상으로 맞이한다.
 
특정한 캐릭터나 장면 그리고 시선을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였던 전작과는 달리 정원의 석탑, 나무, 대파꽃 등은 프레임 바깥의 공간으로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차연서는 차동하가 만들어온 구버전의 ‘축제’를 가위로 오려 사체와 정령들에게 바치고, 이후에는 남양주의 정원을 필사함으로써 그 친구들의 몸이 뛰노닐 공간을 새로이 증축한다.


차연서, 〈축제〉 연작, 2025, 페이퍼컷 위빙(故 차동하의 닥종이에 채색), 가타오카 아키요시의 착시 연구 ‘회전하는 뱀’, 회전형: Ø 95cm, 혀: 10x20cm, 《sent in spun found》 전시 전경(두산갤러리, 2025). 사진: 이의록 ©두산아트센터

그리고 같은 해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허지은 작가와의 2인전 《sent in spun found》에서 차연서는 아버지가 남긴 종이를 새롭게 오리고 직조하여 서로의 꼬리를 물어 다시 시작되는 다채로운 색의 뱀으로 변모시켰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순환하는’ 원이 만들어내는 환영은 정처 없이 죽어 흩어진 몸들의 비통함을 승화시킴과 동시에 퍼포먼스 작업인 〈저 고양이들! (아홉 목숨, 부활하신 어머니)〉(2025)의 무대가 된다.


차연서, 〈저 고양이들!〉, 2025, 퍼포먼스 사전 기록(2025.11.15), 《sent in spun found》 연계 퍼포먼스. 사진: 이의록. ©두산아트센터

김언희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시를 참조하고 각색하여 쓰여진 퍼포먼스의 서사와 구성은 서로 엮인 종이들이 만들어내는 패턴과 상응하고, 파괴와 부활의 순환을 말하는 시의 구절들을 인용한다. 이로써 전시장은 부서진 존재들이 다시 태어나고 각자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장소가 된다.
 
한편, 차연서는 녹으로 얼룩진 흰 가면을 허공에 매달아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몸들이 그 자체로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고, 낡은 손대패를 지지체로 삼아 만든 ‘혀 조각’과 그에 얽혀 있는 핥기, 씻기, 대패질하여 다듬는 행위를 통해 초대의 제스처를 확장한다. 그리하여 작가, 퍼포머, 관객을 막론하고 전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몸들의 등장을 환대하는 것이다.


차연서, 〈축제 25 #14 月印千江〉, 〈축제 25 #15 月印千江〉, 2025, 젖은 닥종이, 쌀풀, 무쇠 기와틀에서 탈형된 종이 마스크; 김언희 「월인천강(月印千江)」, 33x28x6cm 사진: 이의록. ©두산아트센터

차연서는 이러한 예술적 행위를 통해 우리 삶의 다양한 경계들 사이를 횡단하며, 이를 관통하는 여러 몸들과 존재들을 공공의 자리 위로 세운다. 이로써 작가는 그들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고 환대하며, 그들과 함께 남겨진 존재들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작업을 통하여 사람들이 생을 살아가는데 긴요하고도 별스러운 도움을 줄 수 있는 창작자가 되고자 합니다.”   (차연서, 2021 아트센터나비 창의인재동반사업 Creative+ 인터뷰 중) 


차연서 작가 ©두산아트센터

차연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사를 전공했다. 개인전으로는 《거상거상 거상거》(N/A, 서울, 2025),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SAPY 그레이룸, 서울, 2024), 《꽃다발은 아직》(상업화랑 을지로, 서울, 2024), 《이 기막힌 잠》(온라인, 2023), 《Every mosquito feels the same》(TINC, 서울, 2022)이 있다.
 
또한 작가는 《sent in spun found》(두산갤러리, 서울, 2025), 《혀 달린 비》(아트선재센터, 서울, 2024), 《그, 그들, 그리고 그들》(Choi&Choi Gallery, 서울, 2024), 《슬픈 캡션》(SeMA 벙커, 서울, 2024), 《모텔전》(홍대 미성장모텔, 서울, 2023)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24년 프리즈 서울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황혼이 질 때면〉을 발표하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