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화(b. 1990)는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몸에 대해 사유하고 몸과 매체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신체 감각에 주목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진행해 왔다. 특히 그는 빠르게 발전하는 매체 기술에 비해 변화가 더딘 인간의 감각이 만드는 틈새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김수화는 현대 사회에서 연결과 소통이 어떻게 신체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가 어떻게 몸을 경유하여 기술 안에서 형성되고 또 해체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김수화, 〈문지방〉, 2021, 퍼포먼스 ©청년예술청

김수화는 극장, 야외, 스크린을 오가며 안무가와 퍼포머로 활동해 왔다. 특히 그는 “비장소성과 장소성이 혼재된 디지털 공간과 다양한 매체의 재현 방식이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동시대에 몸은 무엇을 보고 어디에 위치해야 할까?”와 같은 질문을 던져 오며, 오늘날의 신체 감각에 대한 깊은 사유를 안무로써 풀어나간다.


김수화, 〈문지방〉, 2021, 퍼포먼스 ©청년예술청

그는 일상에서의 의식, 무의식적 응시 행위부터 가상, 증강, 혼합현실 등의 산업기술이 낳은 다층 현실에서 경험하는 시각으로부터의 지각 행위는 매번 현존재의 위치를 되묻게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작가는 여러 감각을 느끼는 신체에서 시각을 분리해 취급하는 현대 기술 진보의 지향이 “존재를 신체와 정신으로 나누고, 감각을 다섯 가지로 나눈 근대주의적 사고의 연장”이라고 지적한다.


김수화, 〈스크린그라피〉, 2021, 퍼포먼스 ©김수화

이러한 비판적 사유를 바탕으로 제작된 퍼포먼스 〈스크린그라피〉(2021)는 카메라, 줌 화상 대화, 가상현실이라는 매체와 신체가 맞닿는 현상에서 신체와 공간의 현존성을 고민한 작업이다. 나아가 김수화는 이 작업에서 가상공간을 약속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주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유하는 감각 경험의 상실이라는 딜레마에 놓인, 머뭇거리는 객체로서의 신체를 바라본다.
 
이처럼 김수화는 실재하는 공간과 가상 공간의 경계가 점차 흐려짐에 따라 실재 공간에서의 인지는 조각나고, 신체 감각은 서로 동기화되지 않는, 오늘날의 불완전한 신체 감각에 대해 살핀다.


김수화, 〈메타헨즈〉, 2022, 퍼포먼스 ©김수화

이와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메타 헨즈〉(2022)는 VR 속 가상과 현실의 공간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안무가의 신체를 다룬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감각이 가상과 현실의 편재된 공간 속으로 흩어질 때, 지금 여기, 무대 위의 공동체는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 질문을 던진다.


김수화, 〈메타헨즈〉, 2022, 퍼포먼스 ©김수화

이러한 질문은 “서로 다른 감각과 경험 속에서 무엇을 공통의 기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러한 불확정성에서 유동하는 신체를 과거와 같은 종으로서 사유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점을 기반으로 한다.
 
김수화는 〈메타 헨즈〉에서 VR 기계를 매개로 가상과 신체의 부조화와 불완전한 동기화를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그 손을 잡기 위해 시도한다.


김수화, 〈주파수 샤워〉, 2024, 영상, 단채널 스테레오, 21분 2초, 단행본(194쪽) ©김수화

한편 2023년부터 작가는 와이파이 신호를 비롯한 무선 통신 주파수를 탐험하기 위해, 신호들을 감각의 영역으로 변환하는 작은 기계로 만들고, 그것을 여러 공간에 설치하면서 주변 환경과 몸의 반응을 관찰해 왔다.
 
신호의 끊어짐과 연결됨, 보이지 않음과 예상할 수 없음, 불안정성과 통제 불가능성 등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몸을 통과할 무한한 신호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에 말에 따르면, “그 신호들이 통과할 또다른 개체들의 몸을 더듬으며 먼 시간으로부터 먼 공간으로 향하는 사이에 있기를 선택해본다.”


김수화, 〈연결연습: 우리는 거기서 만난다〉, 2024, 영상, 10분 56초 ©김수화

2024년에 개최한 개인전 《우리는 거기서 만난다》는 “언제나 이동하는 진동으로서 ‘우리’가 미지의 ‘거기’에서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하여, 무선 통신 주파수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그물망안에 놓여 있는 우리의 신체에 대해 다룬다.
 
전시 제목의 원형이 된 영상 작업 〈연결 연습: 우리는 거기서 만난다〉(2024)는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와이파이 주파수를 변형시켜 ‘우리는 거기서 만난다’라는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먼저 작가는 와이파이 신호 ‘Android 9707’을 감지하는 센서에 ‘우리, 는, 거기, 거기서, 만난, 만난다’ 등의 단어들을 세기 영역에 따라 다르게 저장했다. 그리고 그 해당 센서를 전시장 바깥의 외부 정원에 설치한 다음 프로그래밍된 음성을 현실 공간에 옮겨 오기를 시도했다.
 
세 명의 퍼포머는 전자기파와 신체가 서로 굴절과 회절의 이유가 된다고 믿으며, 문장 완성을 위해 센서 앞에서 부단히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단어의 연결은 미끄러지고 어긋나게 된다.


김수화, 〈예측할 수 없는 이동〉, 2024, 영상, 단채널 스테레오, 9분 18초 ©김수화

한편 또 다른 작품 〈예측할 수 없는 이동〉(2024)에서 작가는 서울 금천구의 한 작업실에 센서를 부착하여 와이파이 신호의 세기 변화에 따라 각각의 세기 영역에 저장된 서로 다른 소리가 재생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김수화는 이 센서 안에 시적인 문장들을 입력했다. 그러나 이 문장들은 하나의 의미망으로 모이지 못하고 나타나고 끊어지기를 되풀이한다. 파편과 같은 음성들이 떠도는 동안 화면에는 작가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한 창문 바깥 풍경들이 어떠한 인과 없이 무작위로 나열되고 중첩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김수화는 모든 것이 방대한 데이터망 안에서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초연결시대의 틈새를 들여다 본다. 이로써 보면서 보지 않고, 만지며 만지지 않고, 들으며 듣지 않는 오늘날의 만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김수화, 〈애프터바디 1.0〉, 2024, 퍼포먼스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MMCA 다원예술 2024 쇼케이스》에 참여하며 선보인 퍼포먼스 작품 〈애프터바디〉 또한 핸드폰 와이파이 주파수 ‘Android 9707’ 안에서 전개되었다.
 
작품 제목인 ‘애프터바디’는 주로 선박이나 항공기 동체 뒤쪽에 위치하며, 안정성과 조종성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구조물을 일컫는다. 김수화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물리적인 신체를 관통하고 존재의 경계를 초월하는, 문자 그대로의 ‘애프터바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김수화, 〈애프터바디 1.0〉, 2024, 퍼포먼스 ©국립현대미술관

〈애프터바디〉는 이미 존재하는 공연(데이터)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공연이 서로 연결된 상태로 전개되었다. 여기서 광속으로 이동하는 전자기파 Android 9707은 익숙한 표상으로 재현(representation)되는 동시에 퍼포머의 행위를 통해 물질적으로 재연(reenactment)된다.


김수화, 〈애프터바디 2.5〉, 2025, 퍼포먼스 ©Art Hub Copenhagen

초연결이 일상이 된 오늘날, 전자기파는 데이터로 기록된 대상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광속으로 전달되는 데이터는 실재하는 신체에 대한 그리움, 호기심, 의심과 머뭇거림을 해치우면서 이들이 부재한 상황을 기본값으로 설정한다.
 
가상적 연결을 더듬어 보는 이 공연은 데이터로 이미 존재했던 공연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대치하게 만들어, 데이터로 존재하는 대상과 실재하는 대상 사이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던 경계를 드러낸다.


김수화, 〈스퀘어 프랙티스: 나의 참조들, 아무 곳도 아닌 곳에서〉, 2025, 퍼포먼스 ©김수화

나아가 최근 작업인 〈스퀘어 프랙티스: 나의 참조들, 아무 곳도 아닌 곳에서〉(2025)를 통해 김수화는 와이파이 신호의 운동에너지와 함께 요동치는 환경에 머물고 있지만 인간의 감각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는 세계를 상상한다.
 
이 작업은 작가가 핸드폰 와이파이 신호 Android 9707를 감지하고 흐름의 세기에 반응해 소리를 내는 기계에 마주 앉으며 시작된다. 그는 이 신호의 변화를 인간이 이해하는 언어와 사물, 행위로 번역해 신호를 포착하는 안무 형식을 짓고 수행한다.
 
모든 물리적 환경이 와이파이 신호 세기에 변수가 되어 안무에 개입하고, 예측할 수 없는 소리의 타이밍은 곧 리듬이 된다. 모든 몸은 신호와 데이터의 정확성에 대비되는 변수로서 이 실험에 참여하는 것이다.


김수화, 〈스퀘어 프랙티스: 나의 참조들, 아무 곳도 아닌 곳에서〉, 2025, 퍼포먼스 ©김수화

이렇듯 김수화는 오늘날 우리의 몸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과 환경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 틈새의 감각을 언어, 행위, 사물로 번역하여 시각화 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디지털 매체들과 함께 파편화된 감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놓치고 있던 감각들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계속해서 갱신 중인 신체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든다.

 ”우리는 가상 공간에서 쉽게 연결되고 쉽게 끊어진다. 디지털 매체를 경유하는 우리의 만남은 서로를 물리적으로 더듬을 수 없지만, 개별 신체가 보거나 듣거나 읽는 행위를 하고 이 메시지 뒤에 있을 상대와 만난다는 느낌을 재차 획득함으로써 작동한다.
 
(…) 물리적인 공동 경험이 부재한 소통 행위가 믿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들에 대한 알아차림과 적응은 디지털 매체들과 함께 파편화된 감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확대해서 들여다보아야 할, 줄곧 갱신 중인 신체 감각일 것이다.”
 
 
 
(김수화, 《우리는 거기서 만난다》 서문 중) 


김수화 작가 ©Art Hub Copenhagen

김수화는 서강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에서 안무를 공부했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안무센터 몽펠리에 폴발레리대학교에서 석사 과정 중에 있다. 개인전으로는 《스퀘어 프랙티스: 나의 참조들, 아무 곳도 아닌 곳에서》(서울예술인지원센터, 서울, 2025), 《우리는 거기서 만난다》(자문밖아트레지던시, 서울, 2024)가 있다.
 
또한 작가는 《MMCA 다원예술 2024 쇼케이스》(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코펜하겐, 2024), 《옵/신 페스티벌 2022》(서울 문래예술공장 갤러리M30, 서울, 2022), 《슬로베니아 무용축제 UK[REP] 2022》(MG+MSUM(Museum of Contemporary Art Metlkova), 류블랴나, 2022) 등에 참여한 바 있다.
 
김수화는 2025년 아르코데이 ‘아티스트 라운지’ 작가로 참여했으며, 스트리아 아트스페이스 스티프트밀슈타트 페스티벌 및 레지던시(2022) 및 서울문화재단 문래예술공장 비넥스트BENXT 다원분야(2021) 작가로 선정되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