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민경(b. 1988)은 사람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소리의 풍경들을 마주하고 들어보는 작업을 한다. 수행적인 퍼포먼스, 사운드 설치 등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은 빛과 소리를 기반으로 작은 기억, 흔들리는 잎의 미묘한 떨림을 감각하는 시간에 집중하게 한다.   


오로민경, 〈돌, 빛, 결〉, 2021, 퍼포먼스 ©오로민경

그의 작업은 흐르는 시간의 현상 속 빛과 소리의 작은 움직임에 주목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쉽게 지나쳐 버리고 마는 빛, 그림자, 에너지, 관계 등의 미묘한 떨림 등을 관찰한다.
 
오로민경은 자신을 “환경을 만드는 수행자”이며, “빛과 소리의 움직임, 흐르는 시간에 집중하며 공간과 놀이”한다고 소개한다. 설치나 퍼포먼스 등으로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은 빛과 공기, 소리와 사회적 현상 사이를 감각을 매개로 연결한다.


오로민경, 〈붙잡다〉, 2010, 퍼포먼스 ©오로민경

이러한 빛, 그림자, 공기, 소리 등의 “작은 것들”은 오로민경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한다. 작가는 이 미묘하고 섬세한 떨림을 함께 감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오늘날 자연, 공동체, 사회 사이에서 잊혀진 관계의 감각을 되살릴 “더 작은 힘”에 대해 탐구해 왔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선보인 〈붙잡다〉(2010)에서 오로민경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도로 위 빛의 형태를 분필로 따라 그리며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좇았다. 도로 위 빛의 조각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그가 분필로 남긴 빛의 형태는 자리에 남으며 순간을 포착하려는 시도 자체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오로민경, 〈그 때 담다〉, 2010, 상자 ©오로민경

같은 해, 아현동 재개발 지역에서 작업한 〈그 때 담다〉(2010)는 사라지는 공간 속에서 고요하지만 꿋꿋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작은 것들의 흔적을 기록한다. 오로민경은 차분하게 자신의 시간을 지키던 아현동 풍경들의 음영을 사진에 담아 그것의 외곽선을 작은 종이 상자 뚜껑에 옮긴 뒤 그 선들을 도려냈다.   
 
상자의 뚜껑을 닫으면 그 안에는 작가가 마주했던 풍경 속 빛과 그림자가 생긴다. 상자 안에는 그 때 그 순간의 음영이 담기며, 곧 사라질 시공간 속 작지만 분명한 존재의 흔적들이 기록된다.


《어떤이의 풍경》 전시 전경(대안공간 눈, 2012) ©오로민경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사라지는 것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그 대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의 작업 방식에 초석이 되었다. 이후 오로민경은 사라져 가는 존재의 흔적이 가진 미세한 진동을 소리와 빛 등으로 전환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설치와 퍼포먼스 작업 등을 이어왔다.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 전시 전경(팩토리2, 2019) ©오로민경

나아가 2019년 팩토리2에서 열린 개인전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에서 작가는 이러한 작은 것들의 힘으로 구성된 감각적 관계를 통해 타인 또는 사회가 규정하는 건강, 성공, 정상성 등에 대한 기준점들에 질문하며, 이 점의 위치를 옮겨 보기 위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전시는 아픈 여성 과학자인 ‘영인’이라는 가상 인물의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인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적응에 실패하지만, 본인과 비슷한 처지에 놓은 다양한 직업의 동료들을 만나 ‘끝의 입자 연구소’를 차리고 생명을 살리는 시선에 대한 연구를 한다.
 
생명을 살리는 시선에 대한 연구란 영인의 서사 안에서 “다양한 ‘우리’가 보는 서로 다른 점들이 모일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가 커질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 확장된 세계에서 앞으로 더 많은 생명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 전시 전경(팩토리2, 2019) ©오로민경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구성된 전시는 공간 안에 배치된 장치들과 관객이 사용하는 감각이 서로 조응하며 이루어졌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보는 행위로 인해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또한 전시장 내에서 관객이 사용하는 시각적 감각은 청각적 감각으로 연장되거나 촉각적 감각은 시각적 감각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그것이 보는 감각이든 듣는 감각이든 단 하나의 감각을 통해서도 작가가 세심하게 펼쳐 놓은 작은 움직임과 번지는 빛, 미세한 소리와 떨림의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 전시 전경(팩토리2, 2019) ©오로민경

아울러 전시는 작가 스스로가 다른 이들, 일명 ‘오로민경과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를 구성해 공동의 기획, 작업, 협력임을 드러내며, 그들과 준비한 결과물로서의 전시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공동체가 어떤 모습일지 슬며시 보여준다.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만들어진 전시장의 작품들은 전시장에 찾아오는 관객들을 친구로 환대하며, 보다 확장된 이야기를 다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었다.


《폐허에서 온 사랑》 전시 전경(아트잠실, 2022) ©오로민경

이처럼 물리적 감각을 통해 사회적 감각으로 확장하는 오로민경의 작업은 ‘사회적 사건과의 조우’를 계기로 더욱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작가는 소수자, 난민 문제에 주목하는 ‘작은빛’ 콜렉티브 활동 등을 통해 예술이 사회적 사건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방식들을 고민하고 수행해 왔다.
 
그는 “예술이 애도와 위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소리와 마음이 필요”한지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협업자들과 그 해답을 찾아 나섰다. 예를 들어, 2022년 개인전 《폐허에서 온 사랑》은 그의 작업에 2021년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연대하고자 시도했던 ‘작은빛’ 콜렉티브의 메시지가 포개져 있었다.


《폐허에서 온 사랑》 전시 전경(아트잠실, 2022) ©오로민경

전시장의 작업들은 대부분 관객들의 능동적인 조작에 의해 활성화 되었다. 관객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여러 장치들을 키고 끄며 어떤 운동의 시간 속에 머물다가 또 다시 그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다.
 
가령, 장난감과 연결된 스위치를 키면 움직이는 사물 ‘어리석은 운동’ 시리즈는 관객이 작동시킬 경우 묶인 자리에서 직진하거나 맴돌고 그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작가는 이것이 “사랑의 동작”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묶여있지 않은 장난감에는 “삶, 자유는 자유를, 용기는 용기를, 사랑”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이는 2021년 미얀마 쿠데타에 대항해 거리로 나간 미얀마 사람들에 연대하기 위한 ‘작은빛’ 콜렉티브의 영상에 사용했던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폐허에서 온 사랑》 전시 전경(아트잠실, 2022) ©오로민경

또한 진동스피커가 부착된 테이블에서는 작가가 만든 음악이 흘러나왔고, 테이블 위 오래된 보석함의 문을 열면 사방의 스피커에서 2021년 당시 철거 위기에 놓인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기억공간 주변에서 녹음된 소리들이 울려 펴졌다.
 
이와 같은 여러 작업들은 관객의 능동적인 개입을 통해 다양한 삶의 현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며, 연대의 감각으로 확장되는 경험으로 이끌었다.


오로민경, 〈빛을 전하는 시간〉, 2023,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 전시 전경(백남준아트센터, 2023) ©오로민경

그리고 오로민경은 2023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에 참여하며 미술관에서 보는 경험을 다양한 감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작업은 창가에 놓인 벤치와 헤드셋뿐이었다. 헤드셋에서 들리는 몇 사람의 음성은 해 질 무렵 장애인과 비장애인, 서로 다른 몸의 친구들이 만나 시간의 풍경과 빛에 대해 나누는 대화였다.
 
이는 작가가 사전 워크숍으로 청취한 다양한 감상 방식의 총합이었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백남준의 대형 설치 〈트랜스미션 타워〉의 레이저와 네온, 그리고 자연의 빛에 대해 나눈 감각의 대화들을 들으며, 작품과 풍경을 다시 마주하기를 제안했다.


강재영x전경호x오로민경, 〈작은 마음, 강한 위로〉, 2023, 아두이노, 사운드센서, 거울, 모터, 혼합매체 ©오로민경

이렇듯 “함께 본다”는 감각을 위해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지 고민에서 비롯된 그의 전시는 전시 기간동안 다양한 협업자들을 초대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가령 퍼포먼스 작업 〈작은 마음, 강한 위로〉(2023)에서 작가는 서로 다른 몸의 감각의 두 동료를 초대해 자신과 세계를 애도하고 위로하기 위해선 어떤 마음과 소리가 필요한지 질문하였다.


강재영x전경호x오로민경, 〈작은 마음, 강한 위로〉, 2023, 아두이노, 사운드센서, 거울, 모터, 혼합매체 ©오로민경

오로민경은 협업자들과 함께 소리와 공간이 가지는 치유의 가능성, 그리고 기술을 인간적인 애도와 연결할 방법에 대해 탐구했다.
 
첫 번째 협업자인 전경호는 본 퍼포먼스에서 깨지 못한 마음을 깨어내는 소리를 꺼내 보고자, 망치로 징을 내리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꽹과리에 차임벨로 연주했다. 한편, 두 번째 협업자인 강재영은 삿포로 여행 중 모이와 발전소 희생자 비석 앞에서 녹음한 소리를 건네며 부재된 애도의 시간을 건넨다. 그리고 오로민경은 이들의 소리를 함께 수음하면서 미디 키보드로 빛을 연상하는 소리를 만든다.


오로민경, 〈땅 아래, 서로의 흰 빛들〉, 2024, 《하나의 미래: 머금은 숨, 펼쳐진 길》 전시 전경(고려대학교박물관, 2024) ©오로민경

이와 더불어, 최근 오로민경은 ‘분단’에 대한 감각에 관심을 가지며 한국이라는 지형 안에서 회복을 찾는 소리풍경을 만들어 왔다. 예를 들어, 2024년에 진행한 〈땅 아래, 서로의 흰 빛들〉은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으며 시작된 것으로, ‘분단된 사회를 마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실험이었다.
 
불이 꺼진 채로 멈춰 있는 전시장은 관객이 조명을 켜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대칭 구조물을 비추는 빛이 들어오고, 거울 기둥이 회전하며 두 개의 달을 만들어 낸다. 이때 새들이 움직이고, 작가가 분쟁지역과 일상에서 채집한 소리들이 공간을 채우게 된다. 


오로민경, 〈땅 아래, 서로의 흰 빛들〉, 2024, 《하나의 미래: 머금은 숨, 펼쳐진 길》 전시 전경(고려대학교박물관, 2024) ©오로민경

작가는 이 일련의 감각적 장소를 통해 “지금 우리가 묻고 싶은 기억과, 복원하고 싶은 소리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의 작업은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어떻게 지금이라는 미래를 함께 꿈꾸는 일로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작동하며, 사라지는 것들, 그리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작은 연결의 힘에 대해 탐구한다.


오로민경, 〈소리 뒤의 소리 #2_마른 풀의 노래〉, 2024, 사운드 센서, led, 진동모터, 아두이노,혼합매체 칼림바, 테이블(60x80x70cm)에 선풍기 4개, 수조 2개 ©오로민경

이처럼 오로민경의 작업은 작고 미묘한 요소들, 그러나 언제나 우리의 삶에 자리하며 우리를 지탱해온 존재의 진동을 바탕으로 다양한 삶 속의 관계에 대해 살핀다. 우리가 채 감각하지 못했던 사소한 떨림으로 채워진 그의 공간은 단지 물리적인 감각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이를 매개로 기술과 사회, 인간과 자연, 과거와 미래 사이의 연결점을 찾으며 새로운 연대의 감각으로 확장시킨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떨어지는 한 낮의 빛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오로민경, 작가 노트) 


오로민경 작가 ©백남준아트센터

오로민경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여러 협업자들과 함께 전시, 공연, 워크숍, 상영회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폐허에서 온 사랑》(아트잠실, 서울, 2022),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팩토리2, 서울, 2019), 《어떤이의 풍경》(대안공간 눈, 수원, 201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비(飛)물질: 표현과 생각 사이의 틈》(경기도미술관, 안산, 2025), 《의존하는, 의존하지 않는》(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5), 《여기 닿는 노래》(아르코미술관, 서울, 2024), 《우리가 바다》(경기도미술관, 안산, 2024),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오로민경은 2019년 울산과학기술대 사이언스 월든 선정작가 및 2017년 Asian Cultural Council 펠로우십 등에 선정된 바 있으며, 그의 작품은 경기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