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것, 씌워진 것, 굴절된 것》 전시 전경(갤러리도스, 2021) ©유상우

입김의 모양

복잡하고 섬세하게 발전하고 있는 언어와 별개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단절되고 서로를 오해하며 살아간다. 언어역시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도구와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사용된다. 화합의 고리와 분쟁의 씨앗이라는 다양한 고리를 불러일으키는 언어는 합의된 기호가 지닌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그자체로 설명될 수 없는 비정형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유상우는 사람들의 육신에 새겨진 자신도 모르는 얇고 투명한 문화와 주관의 허물이 감정 없는 기호의 형태를 어떻게 변형시키고 예측불허의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질문을 던진다. 

말을 깨우치면서 시작된 사고는 단순한 본능적 갈망에 이유를 찾고 방향성에 주사위를 던지게 되었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머릿속에 들리게 되는 자신의 목소리와 눈을 감아도 경험이 재연하는 현상은 자신이 배운 언어로 편집되고 재해석된다. 객관적이라 불리는 기록물도 언어에 의해 변형되고 원래의 사건의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형상을 막론하고 작품전반에는 껍데기가 존재한다. 다양한 두께의 표피는 그 아래 존재하는 사물의 형상을 닮아있다고 유추하기 쉽지만 작가가 정말로 사물 위에 물질을 덧씌운 것인지는 미상이다. 작가가 사물의 형상에 추가한 껍데기는 그 장막너머의 본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수도 있고 평상시라면 주목받지 못한 하찮은 대상에 이목을 끄는 자극적인 장치일 수도 있다. 


유상우, 〈녹색의 파편〉, 2021, 잎, 오브제, 단채널 비디오, 가변크기 ©유상우

때로는 껍데기가 본질인 경우도 존재한다. 그것이 지닌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인해 외부의 영향이 스며든다. 그 경우는 속을 채우고 있는 무언가가 본질의 형태를 변형시키며 간편하고 위험하게도 판단의 척도가 된다.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형상과 그 일련의 과정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가 지닌 수많은 얼굴을 발견한다. 장치를 통과한 언어가 지닌 모습은 여과기를 통해 정제된 순수의 상태인지 혹은 여과기에 묻은 물질이 우러나온 혼탁한 결과물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눈동자를 움직이게 한다. 

화면을 물들인 거뭇한 얼룩은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의도된 오물이자 형상으로 다가온다. 관점에 따라 액체로 인해 종이에 안착되어있던 잉크의 입자가 흐트러진 상태인 훼손된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난해한 정보를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을 다스리기 위해 익숙한 형상을 찾으려는 시도를 한다면 아직 배우지 않은 미지의 언어일 것이다. 글자를 얼룩으로 변화시킨 액체는 작가의 손 밖에서는 결함이자 본질을 흐트러트리는 외부의 영향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상태에 대한 관객의 판단과 사고를 얼룩지게 하는 액체는 언어이다. 


《숨겨진 것, 씌워진 것, 굴절된 것》 전시 전경(갤러리도스, 2021) ©유상우

관객이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단순하고 짧은 시간의 과정은 작품에서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희미한 얼룩을 남기는 모습을 닮아있다. 생각이라는 여과기를 거치고 나온 결과물은 사소하고 우스운 이유로 순수의 상태가 되거나 찌꺼기가 된다.

금방 사라지리라 여겨지던 투명하고 얕은 자국은 인공적으로 구축한 계산의 결과와 달리 장소의 온도와 먼지에 섞여있는 가루와 같이 자극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요소들로 인해 예측을 벗어난 색과 형상을 지니게 된다. 유상우의 실험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언어에 무엇을 섞으며 어떻게 사용해왔는지 되새기게 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