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Self Love Club》, 2024.09.14 – 2024.10.26, Murmurs, LA
2024.09.13
조정민
《Self Love Club》
전시 전경(Murmurs, 2024) ©유해나
Self
Love—“스스로를 사랑하라.”
부정할 수 없이 멋진 말이다. 시대와 장소, 문화를
불문하고, 종교적 인물에서 철학자, 팝 스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사랑의 미덕을 설파해
왔다. 노자의 “자기를 받아들이면 온 세상이 그를 받아들인다”는 말처럼, 자기 사랑의 중요성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는 오늘날 웰빙과
신체·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일상을 기반으로 한 이상적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했다.
요가하러
갈 준비를 해보자. 나그참파(Nag Champa) 향을 피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룰루레몬으로 차려입은 뒤, 스마트폰에서 월 14.99달러짜리 앱을 열어 아사나 자세를 배운다. 아로마테라피 샴푸로
머리를 감고, 인삼 추출물이 들어간 안티에이징 크림을 바른다. 단백질과
콜라겐을 포함한 12가지 재료로 만든 비싼 스무디 한 잔은 오늘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익숙하지 않은가? 아마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이
문화 속에 있다.
《Self Love Club》
전시 전경(Murmurs, 2024) ©유해나
이번
전시에서, 일상적 미시 소비 속 뒤틀린 역사들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매끄럽게 작동시키는지—아버지의 간장 공장과 어머니의 화장품을 통해 탐구해온—유해나는 시선을
이번에는 언니가 관심을 두고 있는 요가와 필라테스로 돌려, 셀프케어 문화와 그 산업적 구조에
집중한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 통치 시기, 요가¹는 금지되었고, 신체와 마음을 연결하는 고대의 정신적 전통은 해체되었다.
비슷하게, 서구의 식민지화는 가사·생산
노동을 공유하는 공동체 기반의 토착적 생활 방식을 잠식했고, 그 자리에 자본주의가 주입된 개인주의를 새롭게 심었다. 인드라 데비²나 리처드 히틀먼처럼, 긴 시간을 지역에서 보내며 요가의 본질을 깊이
배우고 이를 타인에게 전하고자 했던 서구 인물들조차, 자본주의가 태어난 그들의 고향에서는 극단적 상품화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Self Love Club》
전시 전경(Murmurs, 2024) ©유해나
요가가
건강과 아름다움에 효과가 있다고 여겨진 점, 그리고 극단적인 오리엔탈리즘적 페티시가 맞물리며 요가는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했고, 그 결과 영양제·뷰티
보조제 등 2차 산업이 급격히 팽창했다. 이는 전통
지식과 자원의 착취, 약초·약용 식물의 대규모 재배, 그리고 환경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초래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화장품 베이스가 되는 글리세린은 팜 오일 노동 착취로 생산된다. 미용식품으로 인기 있는 열대 과일은 운송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 배출을 유발하며, 한때 페루 안데스 지역에서만 자생하던 마카(Maca) 같은 야생
식물종은 대량 재배용 품종으로 개발되어 생태적 균형을 교란한다. GMO 작물이 그렇듯, 오늘날의 요가 역시 1920년대 서구의 상반된 관점에서 출발한 필라테스 및 다양한 운동 방식과 교배되며 새로운 산업 영역을 형성했다.
《Self Love Club》
전시 전경(Murmurs, 2024) ©유해나
이제
다시 “Self Love”라는 아름다운 말을 들여다보자. 식민지화와
신자유주의를 발전시키는 극단적 개인주의는 끊임없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자본에 예속시키며 고립과 자기 의심 속으로 밀어 넣고, 관계를
끊어낸다. 이때 우리는 주체가 아니다.
‘자기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자기 사랑은, 결국 자본주의
바깥에 존재하고자 꿈꾸는 ‘나’를 치유의 대상으로 규정해 다시 노동의 순환으로 돌려보내는 장치다.
자기 사랑—“나”가 주체라고 말하는 그 순간—은 사실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문제의 원인이 결국 ‘나 자신’에게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자기 사랑 산업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며 왜곡된 역사를 소비하는 뒤틀린 감정과 신체의 풍경을
펼쳐 보인다. 차갑고 기이한 마사지 장치들은 지속 가능한 젊음, 건강, 내적 평화를 0.1mg씩 약속한다.
글리세린으로 만들어진 몸을 부드럽게 주무르는 장치는, 우리의 목을 굽게 만드는 노트북을
당장 부숴버리고 싶거나 상사에게 반항하고 싶은 충동을 가라앉힌다. 요가 매트와 분해된 필라테스 기구에
압착된 역사들은 투명한 신체들 속에서 굴절되고, 소화되지 않은 온갖
‘건강식’ 재료들과 뒤섞인다.
믿기
어렵겠지만, 균에 감염된 붓나무 뿌리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매우 좋다고 한다. 그러니 금값만큼 비싸더라도 결국 ‘나를 위한 투자’가 아니겠는가?
마음을
사랑으로 풀어내며 들이마시고, 팔다리가 찢어지는 자가 고문 속에서 숨을 내쉬며, 이 시대의 아름다운 여성, 충실한 소비자, 건강한 노동자로 다시 태어난다.
들이마시고, 내쉬자.
1.
Yoga는 산스크리트어 “Yuj(요그)”에서
유래하며, “멍에를 씌우다”, “묶다”라는 뜻을 가진다. 여기서 ‘전차(chariot)’는 인간의 몸을, ‘말(horses)’은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을, ‘마부(charioteer)’는 영혼(순수 의식)을 상징한다. 요가는 몸과 마음을 조절하는 수행이며, 산스크리트어에서 Yoga는 모든 형태의 ‘연결’을 의미한다.
2.
인드라 데비(1899–2002)는 ‘요가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리는 인물로, 20세기 서구 특히 미국과
할리우드 대중에게 요가를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개척자였다.
글. 조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