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ental Sauce Factory》 전시 전경(갤러리 신라, 2022) ©유해나

유해나의 스튜디오는 수도권 외곽의 ‘지식산업센터’라 불리는 곳 중 하나에 자리하고 있다. 팬데믹 시기 투자 붐 속에서 개발된 이 고층 오피스-공장 복합 건물들은 한국 곳곳에서 아직도 수백 채가 신축 중이다. 이미 완공된 건물들조차 부동산 황금지대로 기획되었음에도 실제로는 사람의 흔적이 드물고 텅 빈 유령 건물처럼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 유동 자본의 림보(Limbo) 같은 공간에, 고정된 형태로 가두기조차 어려운, 과학 실험을 닮은 유해나의 조각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다. “그건 정말 불안정한 상태예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며 “그런 불편함—극단적인 감정—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봄 스튜디오에는 젤라틴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젤라틴은 흔히 식품 보존제나 화장품 베이스로 쓰이는 재료다. 바닥에는 다양한 보존 방식에 대한 내구성 실험 중인 일상적 사물이 진공 포장된 상태로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사진 이미지가 인쇄된 요가 매트, 매끈한 브랑쿠시 조각을 연상시키는 대량 생산된 폼롤러들, 그리고 마사지·이완 도구를 본떠 만든 금속 오브제들이 있었다.

또 다른 선반에는 유기물이 담긴 유리 병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메주(fermented soybeans) 덩어리와 금색으로 칠해진 인삼들이 전기 인덕션이 올려진 카트 위에 일렬로 놓여 있었다. 이는 아시아 할머니의 거실에서 볼 법한 약주나 ‘건강을 위한 약재 담금병’을 연상시키며, 전통 치유 방식과 현대적 자기 관리 도구가 기묘하게 뒤섞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수년간 서울과 LA를 오가던 유해나는 팬데믹 직전쯤 어머니의 암 투병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 정착했고, 어머니는 이후 세상을 떠났다. 작가에게는 다량의 약품과 건강 보조제가 남겨졌다. 유해나는 그것들을 액화하고, 순환시키고, 작품으로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팬데믹 한가운데서 만병통치약 같은 뭔가를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며, 재배·발효 과정 등을 활용한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중 하나인 〈Milky Way Table〉(2021)은 LA의 Murmurs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The Oriental Sauce Factory》 기간 내내 공간에 자리잡았는데, 이때 ‘소스(sauce)’는 아크릴로 둘러싸인 풀(pool) 안에서 발효되는 콩, 미국 약국에서 구입한 알약과 보충제들, 그리고 동아시아 전통 재료들이 함께 뒤섞여 만들어졌다.

Haena Yoo, I was the placebo, 2023 © Haena Yoo

최근 작업에서 유해나는 유기물과 액체를 유리 구 형태에 가두고 있다. 〈I was the placebo〉(2023)는 그 대표적 사례로, 운지버섯(turkey tail mushrooms) 과 황기(hwanggi) 같은 약재들이 액체에 잠긴 채, 보존과 부패 사이에 끼인 상태로 유리 구 내부에 갇혀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병원의 이름을 딴 뉴욕 Bibeau Krueger 갤러리의 전시 《Severance》(2023)에 소개되었다.

“우리는 실패에 대해 정말 많이 이야기했어요.” 유해나는 다시 서울과 LA를 오가려는 계획을 이야기하던 중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시스템적·사회 구조적 실패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어요. 그런 실패를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반영하고 싶어요.”

유해나는 고정된 상태와 봉인·보존(containment)의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방식으로, 불안정성과 긴장을 생성한다. 이는 오늘날의 무제한적 위기 속에서, 예술이 ‘중립적이고 편안하다’는 환상을 깨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일종의 경보처럼 기능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