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원(b. 1992)은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지점과 그를 둘러싼 상황을 들여다보며 개인적 서사를 캔버스에 담아 왔다. 특히, 그는 4대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 형태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 성장과 노화, 돌봄과 의존에 관한 복합적인 감정과 단상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왔다.

정주원, 〈작업중〉, 2017, 광목에 동양화물감, 53x45cm ©정주원

정주원의 회화는 작가 자신과 주변들을 관찰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단지 평범한 일상이기보다는, 삶의 단계에서 겪을 만한 보편적인 상황들과 이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에 대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갤러리3과 이목화랑에서 나누어 열린 개인전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는 막 작가의 길로 들어선 청년작가로서 겪었던 고민과 불안감을 담고 있다. 정주원은 자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전시를 통해 어떻게 하면 미술을 계속 하면서 엄마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 작가 자신과 관객들, 그리고 동시대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주원,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 2017, 광목에 동양화물감, 53x45cm ©정주원

또한 전시는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청년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담겨져 있었다. 미안하지 않으려는 첫 번째 노력으로, 작가는 자신의 성실함을 증명해 보이고자 본 전시를 위해 작가는 하루에 하나씩 총 24개의 10호 작업을 진행했다.
 
두 번째 노력은 그림을 팔아서 가계에 보탬이 되는 것이었다. ‘가계에 보탬이 되는 드로잉’ 시리즈는 10x10cm 드로잉 36점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가격은 일관적으로 1만 9천 9백원으로 책정되었다. 전시 기간 중 관객들은 작업을 가져가고 그 자리에 놓인 지퍼백에 현금 1만 9천 9백원을 놓았으며, 수익 중 50프로는 작가의 엄마에게 전달되었다.


정주원, 〈사과는 잘해요〉, 2017, 광목에 백토, 동양화물감, 193.9x390.9cm ©정주원

마지막으로, 대형 회화 작품 〈사과는 잘해요〉는 미술에 대한 작가의 고민들이나, 불안, 혹은 미안한 마음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었다. 개인적인 불안함의 집합체이자 기록이지만, 기록을 함으로써 불안은 그림 속에 남게 되고, 미안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미술을 이어갈 작가의 의지는 자유로움을 얻게 된다.

《목젖까지 던지세요, 사랑에》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1) ©정주원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에서는 미술하는 청년작가로서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021년 온수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목젖까지 던지세요,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는 작업만 해오던 일상에서 육아, 간병 등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을 겪으며 품게 된 사랑에 대한 작가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당시 작가는 조카를 돌보는 동시에 부모님의 수술로 간병을 맡아야 했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사랑, 특히 자발적으로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고민해 오며, 그러한 사랑의 풍경을 그림에 담아 내기 시작했다. 


《목젖까지 던지세요, 사랑에》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1) ©정주원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전시의 작품들은 사랑의 양태를 익명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정주원은 사랑이라는 막연한 단어를 어떠한 에너지의 차원에서 생각했다고 말한다. 가령, 그림 속 표정을 가진 동그라미의 형상이 누군가에게 갉아 먹히면서도 웃고 있고, 불타오르며 추락하고, 바다로, 땅으로 내던져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작가는 대상과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답이 없는 것, 형체가 없는 것, 시간을 쏟은 만큼 받아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젖마저 내놓는 사랑의 풍경을 포착하고, 그 에너지를 작품에 담았다.

《목젖까지 던지세요, 사랑에》 전시 전경(온수공간, 2021) ©정주원

그 과정에서 작가는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반복해 그려 나갔다고 말한다. 그동안의 작업 과정과는 다르게 그림을 그리고, 덧칠하고, 사포로 갈아내고, 물로 닦아내고 그 위에 다시 물감을 올리고, 젯소로 덮는 일을 반복하며, 작가는 알 것 같다 가도 모르겠는 사랑이라는 대상에 다가가고자 했다.
 
또한, 그는 사랑하는 마음이 마치 모양을 바꿔가며 계속 굴러가는 말랑말랑한 돌멩이와 같다고 보았다. 전시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평면 작품의 지지대 역할이자 돌탑 형태의 입체 작품은 그러한 작가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었다.

《불멸의 크랙》 전시 전경(GOP 팩토리, 2022) ©정주원

이후 2022년 GOP 팩토리에서 열린 개인전 《불멸의 크랙》은 정주원의 재료 실험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질감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정주원은 동양화의 재료가 가진 한계(색, 표면, 두께 등)를 극복하고자 동양화 물감에 백토와 아교를 섞어 자신만의 물감을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불화나 탱화의 밑작업에 쓰여 온 백토와 접착제 역할을 해온 아교는, 그의 작업에서 물감 자체의 질감을 만드는 역할로 변모된다. 아교와 백토가 만들어내는 어떠한 물자국이나 뭉치는 부분들, 굳으면서 생겨난 크랙 등은 그의 회화에서 새로운 시각적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불멸의 크랙》 전시 전경(GOP 팩토리, 2022) ©정주원

전시 《불멸의 크랙》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크랙에 대한 작가의 불안감에서 출발했다. 처음 작가는 이 크랙이 완벽한 형태의 붕괴이자 미래의 불확실성을 상징하는 불안으로 다가와, 이를 없애야 할 결함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가는 이 크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결함을 제거하는 대신 그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시도로 전시를 구성했다.
 
정주원은 이러한 크랙처럼 물감이 만든 자연스러운 흔적들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마치 노화가 신체에 흔적을 남기듯, 그림 표면에 생긴 크랙이나 물 자국, 얼룩 또한 작품의 일부로서 고유한 서사를 담아내는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작가의 작업 세계에 깊은 변화를 불러왔다. 크랙을 통해 발전된 그만의 표면 작업 방식은 영속성과 일시성 사이의 긴장감을 탐구하는 여정으로 이어가고 있다.

《팽팽한 위로와 안 웃긴 농담들》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 2024) ©아트스페이스 보안

예를 들어, 2024년 아트스페이스 보안에서 열린 개인전 《팽팽한 위로와 안 웃긴 농담들》에서 작가는 ‘살’과 ‘나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에 대한 회화적인 탐구를 보여주었다. 시간성이 드러나는 표면을 다뤄온 작가는 이러한 그의 작업이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는 나무의 껍질과 인간의 피부와 닮아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전시에서 선보인 그림들은 나무의 껍질과 그 형상에 빗대어 인간의 신체와 노화에 대해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팽팽한 위로와 안 웃긴 농담들》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 2024) ©아트스페이스 보안

전시장 도입부에 자리한 작품 〈주름진 궁둥이〉(2024)와 〈이인삼각〉(2024)은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직립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다른 하나는 나무의 형상을 가지며 외형적인 유사성을 띠고 있었다.
 
생명력 가득한 유아기의 부풀어 오른 신체 주름은 무진한 성장을 예감케 한다. 한편 둘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신체를 보조하거나 대신하는 나뭇가지는 바짝 마른 외피를 굳이 비교 언급하지 않더라도 나이 듦에 수반되는 시간성, 정상성에서 분화될 수 있는 소수성을 직시하게 한다.
 
그와 동시에, 이제 막 스스로 서기 시작한 미미하고 어리숙한 힘, 그리고 서로를 버팀목 삼아야만 설 수 있는 힘 사이에는 살핌이 필요한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주원, 〈담담한 무덤〉, 2025, 캔버스에 백토, 동양화물감, 259.1x969.5cm,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5) ©국립현대미술관

이렇듯 정주원은 인간과 자연의 순환의 유사성에 주목하며, 사람의 피부, 나무의 껍질 그리고 회화의 표면이 지닌 시간성을 연결 짓는 회화의 표면에 대해 연구해 왔다.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에 출품한 신작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들은 크게 세 가지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담담한 무덤〉(2025)이라는 대형 회화 작품으로, 죽음의 순간을 맞은 긴 나무와 이를 지탱하고 있는 언덕을 담고 있다. 그 안에는 어떠한 주체와 객체, 주인공과 조연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서로 지지하며 돌보는 관계만이 드러난다.


정주원, 〈많은 것을 뒤로 하고〉, 2025, 캔버스에 백토, 동양화물감, 40.9x24cm ©정주원

두 번째 작업인 ‘서려는 것들’(2025) 시리즈는 통상적으로 회화 작업의 지지대로 사용되는 직선의 각목 대신 노화된 신체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지팡이를 이용하여 직립해 있다. 이때 작가는 약한 것들끼리 서로 기대며 의지하는 형상을 나타내기 위해 구조물의 형태가 너무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불안하고 위태롭게 서 있는 것처럼 연출했다고 설명한다.
 
구상 단계부터 가장 불안해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는 형태를 고민하며, 작가는 형태적으로도 자연스러운 곡선을 가지고 있고, 수명을 연장해 준다는 무속적인 뜻을 내포해 의미적으로도 적합한 연수목 지팡이를 작품에 활용하였다.


정주원, 〈껍질, 얼굴, 주름〉, 2025, 순지에 백토, 동양화물감, 각 114x75cm,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5) ©국립현대미술관

마지막으로 작가는 ‘껍질, 얼굴, 주름’(2025) 시리즈에서 나무의 결, 물결 등 자연의 표면과 사람의 피부를 연결 지어 한지 위에 패턴화 하였다. 그간 평면 작업들에서 시간성을 담은 표면을 레이어를 직접 쌓고 갈아내는 방식으로 두께감을 가진 질감을 표현해 왔다면, 이 작업에서는 두께나 깊이를 직접적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닌 패턴처럼 보이는 평면적인 드로잉으로 구현해 나가는 방식을 새롭게 시도했다.


정주원, 〈나무 돌보미〉, 2025, 캔버스에 백토, 동양화물감, 116.8x91cm ©누크갤러리

이처럼 정주원은 회화를 몸과 가장 내밀하게 연결된 매체라고 여기며, 자신과 맞닿아 있다고 느끼는 상황들과 문제들을 그려왔다. 내밀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왔지만, 그의 그림에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과 사랑이 녹아져 있다.
 
연약하고 위태롭지만 서로 의지하며 곧게 서려는 그의 그림 속 존재들의 모습은 언젠가 모두 서로를 돌보고, 돌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캔버스 앞에 앉았을 때에 내 살갗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는 문제,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을 그리려고 한다. 회화는 그리는 사람의 몸과 가장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매체라고 생각하며, 작가와 작업 사이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정주원, 작가노트) 


정주원 작가 ©정주원

정주원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개인전으로는 《메타베타》(포켓테일즈, 서울, 2024), 《팽팽한 위로와 안 웃긴 농담들》(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4), 《불멸의 크랙》(GOP 팩토리, 서울, 2022), 《목젖까지 던지세요, 사랑에》(온수공간, 서울, 2021),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Gallery3, 이목화랑, 서울, 2017-2018)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 《아마추어》(누크갤러리, 서울, 2025), 《마음이 삼킨 이미지》(뮤지엄 호두, 천안, 2024), 《착륙지점》(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서울, 2024), 《페리지윈터쇼 2023》(페리지갤러리, 서울, 2023), PERIGEE UNFOLD 2023 《세 개의 전날 저녁》(페리지갤러리, 서울,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정주원은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2022-2024), 금천예술공장(2016-2017)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