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시(b. 1999)는 가족, 먹이사슬, 자연재해처럼 인간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구조’와 ‘닮음’의 원리에 주목한다. 그는 개인과 공동체, 부분과 전체의 상호 관계를 바탕으로 한 존재의 의미를 기호와 상징, 도표 같은 형식으로 풀어낸 독특한 회화를 선보이고 있다.

조은시, 〈개와 운석〉, 2023, 캔버스에 유채, 130.3x194cm ©조은시

조은시의 회화는 정교하게 설계된 암호 또는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는 작가는, 캔버스 뒤에 숨겨진 논리와 서사를 치밀하게 설계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그 안의 도상과 분할된 형태들에 모두 나름의 의미가 담겨져 있어 마치 평면의 회화의 모습을 띈 ‘단편 소설집’처럼 느껴진다.


조은시, 〈속상한 날〉, 2023, 캔버스에 유채, 162.2x112.1cm ©조은시

조은시는 ‘닮음’과 ‘불가항력’을 통해 돌발적 사건을 화면 내에 발생시킨다. 상황적 또는 조형적으로 서로 닮은 요소들을 하나의 화면 안에 배치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분석하고 읽어내도록 유도하며 연쇄적인 상상을 촉발한다.  

예를 들어, 〈속상한 날〉(2023)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붉은 색의 물체와 함께 화면 오른편에 나열된 폭력적인 도구들을 연결 지어 보게 함으로써, 나무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상상하도록 만든다. 〈자연의 섭리〉(2023) 또한 화면 속 요소들 간의 연결을 통해 사건을 발생시킨다. 작품은 중앙의 총을 기준으로 화면이 분할되어 있으며, 붉은 색의 곡선이 사건의 발생 순서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은시, 〈자연의 섭리〉, 2023, 캔버스에 유채, 72.7x53cm ©조은시

그러나 그 곡선을 따라 가다 보면 결국에는 알에서 새로, 또 다시 새에서 알로 우리의 시선이 특정한 끝과 시작점 없이 원을 그리며 순환하게 된다. 화면 속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자면, 화면 왼쪽에는 벌레는 사냥하는 새의 모습이 담겨 있는 한편, 오른쪽에는 새를 사냥하는 사냥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순환의 구조 안에서, 새는 사냥을 하던 포식자에서 피식자로 변하고 곡선을 따라 죽은 새는 또 다시 알에서 부화하며 곤충을 잡아먹는 포식자의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이처럼 작가는 형태만 달리한 채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사건의 연결구조를 통해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알레고리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조은시, 〈같은 마음〉, 2023, 캔버스에 유채, 100x80.3cm ©조은시

한편, 〈같은 마음〉(2023)에서 조은시는 폭발하는 화산과 스프링클러의 분출 이미지 간의 ‘닮음’의 관계를 이용해 삶과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산과 스프링클러는 서로 분출하는 이미지를 공유하지만, 하나는 죽음/소멸을 다른 하나는 생명/성장을 은유한다.  

화면 하단에 그려진 공룡의 뼈는 죽음/소멸의 의미와 연결되는 한편, 파릇한 풀숲의 이미지는 생명/성장의 의미와 연결된다. 그러나 이때 작가는 이러한 이원 구조를 드러내며 강조하고자 하기보다는, 이 둘의 조형적, 상황적 닮음을 중심으로 결코 분리된 세계가 아닌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세계임을 이야기한다.

조은시, 〈가짜나무와 벌집〉, 2023, 판넬에 유채, 80x30x35cm ©조은시

나아가 조은시는 이러한 관계를 캔버스 안 가상의 세계에만 구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 세계로 확장해 나갔다. 구획된 캔버스 화면 안에서만 순환하고 연결되던 요소들은, 캔버스 프레임인 나무 판자를 경유해 현실 세계와 접촉한다.  

이러한 시도는 〈가짜나무와 벌집〉(2023)에서 먼저 실행되었다. 나무 판자 위에 나무가 그려져 있지만, 그림으로 재현된 나무는 실제 나무가 아닌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가짜 나무를 원본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캔버스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나무 판자는 부수적인 역할에서 그림 속 나무의 원형이 되어 숨겨진 주인공의 자리에 서게 된다.

조은시, 〈먼 친척〉, 2023, 혼합재료, 가변크기 ©조은시

이렇듯 조은시는 부분과 전체, 원본과 모방, 현실과 가상 사이의 관계를 캔버스 화면 내부에서 나아가 외부적 요소와의 상호 관계로 확장시켜 드러낸다.
 
한편 〈먼 친척〉(2023)에서는 보다 캔버스 외부로 확장된 설치의 형태로 나타난다. 나무 판자 안에 그려진 바닷속 소용돌이의 이미지는 나무 판자와 빨간 실로 이어진 물컵 조형물로 연결되어, 재현된 물의 이미지와 현실 세계의 물이 물리적인 구조로써 하나로 통합된다.
 
이후에도 조은시는 회화와 설치를 넘나드는 조형 실험을 이어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 다양한 관계들의 긴장을 보다 확장된 감각의 경험으로 제안하였다


조은시, 〈중심 연구〉, 2024, 캔버스에 유채, 스테인리스, 추, 가변크기 ©조은시

2024년에 선보인 ‘중심 연구’ 시리즈는 추의 무게와 천의 긴장을 통해 안정적인 구조처럼 보이는 시스템의 유동성을 드러내며, 인간이 의지하는 중심의 허상에 질문을 던진다. 쇠 행거를 중심으로 앞뒤로 나뉘어진 캔버스 천은 그 아래 걸린 추로 인해 균형을 이루지만, 이 균형을 결코 고정적이지 않으며 추의 위치와 천의 긴장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는 유동적인 구조를 가진다.  

이 작품은 원래 허들 모양을 하고 있는 세 작품과 한 세트로 구성되었다. 허들 작업의 양면에는 상반된 내용을 가진 속담의 상징물이 그려져있다. ʻ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 ʻ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ʻ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와 같이 모순되는 속담이 그려져있는데, 이는 언어로 정립된 질서조차 충돌하는 다양한 관점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은시, 〈중심 연구〉, 2024, 캔버스에 유채, 스테인리스, 추, 가변크기 ©갤러리밈

모순되는 속담을 병치시킴으로써 어떤 상황에도 꼭 맞는 하나의 정답, 즉 필연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돌과 돌산, 사막과 모래성과 같이 이미지 간의 친연성, 그리고 균형추를 통해 안정적인 중심과 균형의 의미를 구축하면서도 위태롭고 유동적인 구조를 만들어 놓았듯이, 이러한 허들 작품을 통해 절대적이고 안정적인 것에 대한 허상을 드러낸다.

《트윈플레임》 전시 전경(YK Presents, 2025) ©조은시

나아가, 2025년 YK Presents에서 열린 개인전 《트윈플레임》에서 조은시는 캔버스 안과 밖의 기호들을 이용해 단순히 공간적 구성을 넘어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작품의 내러티브를 확장하는 시도를 보였다.  

먼저, 한 벽면을 가득 채운 화면에는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하얀 거품과 물결이 일며 일렁이는 화면 위로는 빈 철제 양동이가, 하단에는 작은 방파제들이 자리해 있다. 이 장면에서 각기 다른 요소들은 개별화된 존재로서 독립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 얽히고 결합해 하나의 큰 의미를 전달한다.

조은시, 〈방법론적 접근〉, 2025, 캔버스에 유채, 65x65cm ©조은시

다른 작품들 또한 한 사건의 장면을 구성하는 모든 주체가 처음에는 개별적인 존재로서 분리되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정체성을 창조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때로는 분할된 칸 속의 어떤 그림은 입체 구조물에 얹어져 뜻밖의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한다.  

작품 속의 다양한 분할된 칸과 그 안에 담긴 요소들은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개별화된 존재들이 다시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는 순간을 맞이하게 한다.

조은시, 〈땅속 연대기〉, 2025, 판넬에 유채, 화산석, 45x30x30cm ©조은시

이처럼 작품 내부에서 개별성과 전체성이 공존하며 상호작용을 이루는 것처럼, 전시장에 산재된 작품들 사이에서도 관계적인 구조를 가지며 연결된다. 작품들은 비선형적인 구조를 띠는 한편, 보는 이의 시선에 의해 유사한 점들이 연결됨에 따라 선형적인 흐름을 만들어 낸다.  

또한, 작품들 위로 선과 삼각형 같은 기호가 놓이면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처럼 불가분의 관계가 형성된다. 이처럼 전시 《트윈플레임》에서 사용되는 기호들은 공간적 구성을 이루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서사를 강화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였다.

《트윈플레임》 전시 전경(YK Presents, 2025) ©조은시

기호는 관객에게 불가사의한 물음을 던지며 이야기를 추론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바다, 양동이, 방파제, 회오리, 허리케인, 토네이도, 나무, 밤 등 독립적으로 구분되었던 요소들이 서로 얽히며 형성되는 맥락을 구체화한다. 전시에서 나타나는 기호는 ‘돌발성’에 의한 것이 아닌 도식화된 도구로서 인연의 궤적처럼 이어지는 흐름을 인식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아틀라스의 어깨 끝》 전시 전경(갤러리밈, 2025) ©조은시

이어서 열린 개인전 《아틀라스의 어깨 끝》(갤러리밈, 2025) 또한 이미지와 기호, 상징들 간의 관계와 반복을 통해 관객에서 감각적 사고를 유도했다. 각 작품들은 이미지의 친연성, 그리고 기호와 오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석된다.

조은시, 〈땅위 형제〉, 2025, 판넬에 유채, 35x70cm / 〈땅속 형제〉, 2025, 판넬에 유채, 35x70cm ©조은시

예를 들어, 키보드의 형상을 차용한 연작 〈땅속 형제〉(2025), 〈땅위 형제〉(2025)는 한 화면 위에 씨앗 혹은 알이 병렬적으로 놓여 있다. 씨앗과 알이라는 두 기호는 앞으로 개별적인 의미가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알의 무늬가 상이하고 씨앗의 경우 성장하는 양상이 각기 다르게 표현됨으로써, 형태는 닮았지만 운명은 전혀 다를 수 있는 존재들을 통해 다중적인 시간과 해석을 잠재적으로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은시, 〈착각〉, 2025, 캔버스에 유채, 16x22cm ©조은시

〈착각〉(2025)은 자신을 닮은 그림 앞에 홀로 서 있는 계란을 묘사하고 있다. 드로잉북 혹은 노트 위에 그려진 흰색 계란이 본인이라 착각하고 서 있는 갈색 계란을 통해 시각적 자기 인식이 얼마나 불안정한지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미지와 실재,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착란을 나타내기도 한다.  

재현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란 한 판이 그려진 드로잉북은 달력의 모양을 하고 있어 정체성의 추상적 기호들이 이미지로 배치되고, 또 달력의 한 달과 계란 한 판, 서른 살이라는 이중적 기호로 기능하기도 한다.

《아틀라스의 어깨 끝》 전시 전경(갤러리밈, 2025) ©조은시

이렇듯 조은시의 작업은 단일한 내러티브와 의미를 생성하기보다는 복수의 방향으로 의미를 분산시키고 확장한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오인을 바탕으로 그려지고 유도하며, 긴장과 유희를 섞어 정체성과 재현을 유머러스하게 흔든다. 해석의 단일화를 유예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용하며 전체 속에서 튀는 개인과 다름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여 우리 앞에 내보인다. 

그리고 치밀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그의 회화는 단순한 시각적 감상을 넘어, 관람자에게 생산자이자 향유자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작품 해석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이를 통해 조은시는 현대인의 정체성과 그들이 속한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품 속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를 통해 관객들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조은시, 키아프 서울 인터뷰 중) 


조은시 작가 ©키아프 서울

조은시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개인전으로는 《아틀라스의 어깨 끝》(갤러리밈, 서울, 2025), 《트윈플레임》(YK Presents, 서울, 2025)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막힌 곳에서 열리는 길》(에브리데이몬데이, 서울, 2025), 《페리지 윈터쇼》(페리지갤러리, 서울, 2024), 《TOUCH AND GO》(킵인터치, 서울, 2024), 《액체세대》(아트랩반, 서울, 2023), 《삼선평 건샾》(챔버, 서울, 2023), 《핀서 어택》(챔버, 서울,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조은시는 서울문화재단의 청년예술지원 사업(2025)에 선정됐고 아티팩츠가 꼽은 ‘알마낙: 50인의 한국 동시대 작가’(2023)에 이름을 올렸으며, 2025 ‘키아프 하이라이트’ 세미파이널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