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승(b. 1991)은 기술과 인간의 관계성, 사회적 인식 구조에 관심을 두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회의 모습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을 다양한 매체로써 풀어낸다. 특히, 작가는 인간 존재 안에 내재하는 편견이나 차별,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상호 이해의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데이터 시각화, 시청각 아카이브 시스템,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근미래에 도래할 인간의 인식 및 인지 구조를 실험한다.


장진승, 〈DATA, POLAROIDS〉, 2012-, 폴라로이드 사진, 10.752x8.847cm ©장진승

영국 런던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장진승은 인종차별의 문제들을 접한 것을 계기로 사회적인 인식과 차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배경에서 진행된 ‘DATA, POLAROIDS’(2012-) 시리즈는 눈을 감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기록한 아카이브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사진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이 행하게 되는 습관적인 행동들, 이를테면 웃거나 브이를 그리는 등의 무의식적이고 정형화된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으로 눈을 감는 행위를 지시했다.
 
동일한 프레임 속에서 무의식적 행동들이 제한되고, 그러한 모습이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진 속 인물들은 인종과 성별 등을 초월한 “인간 혹은 인류”라는 큰 맥락에서의 존재로 드러나게 된다.


장진승, 〈Face De-Perception〉, 2017, 키넥트 V2, iMac, 오실로스코프, 서브우퍼, 가변설치 ©장진승

작가는 이러한 작업에 대해 “개별적인 정체성을 소거하고 모든 인류가 지닌 유사성을 극대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차별과 편견의 레이어를 상징적으로 삭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을 발전시켜 제작된 2017년 작품 〈Face De-Perception〉은 얼굴 감지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외형적인 특징들을 점과 선으로 치환하여 그 특성을 제거한다. 이 작업은 Faception이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얼굴 인식 시스템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 시스템은 범죄자들의 얼굴 데이터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를 특정해 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진승은 얼굴, 즉 외형만으로 사람을 구별 짓는 이 시스템이 과연 미래를 위한 시스템이 맞는지 의문을 품으며 작업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장진승, 〈Face De-Perception〉, 2017, 키넥트 V2, iMac, 오실로스코프, 서브우퍼, 가변설치 ©장진승

이에 따라서, 작가는 사람들의 개별적 특성을 감지하여 특정 인물을 인식하는 얼굴 ‘인식’ 시스템이 아닌 사람 얼굴의 평균점을 계산해 점과 선으로 나타내는 얼굴 ‘감지’ 시스템을 작업에 활용했다. 우선 그는 키넥트 카메라로 얼굴을 감지하여 흑백의 원본 데이터를 1차 저장한 다음, 그로부터 눈, 코, 입과 같은 얼굴 요소의 각각의 거리를 계산해 이 모든 값을 더하고 나누어 얼굴의 ‘평균값’을 도출하고 저장했다.


장진승, 〈Face De-Perception〉, 2017, 키넥트 V2, iMac, 오실로스코프, 서브우퍼, 가변설치 ©장진승

이 평균값은 스크린에서의 본인의 위치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며, 전체 과정에서의 다양한 부분 데이터의 값 또한 실시간으로 저장된다.
 
이러한 작업은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외형을 패턴화 시킴으로써 서로의 다름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재고하게 만들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한다.

《OLIGOPTICON》 전시 전경(공간:일리, 2020) ©장진승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에서 장진승은 얼굴의 개별적 요소들을 소거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2020년 그의 첫 개인전 《OLIGOPTICON》에서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 자체와 그로부터 발현할 ‘데이터 아카이브 구조’에서의 연결과 연동, 그리고 인간의 인지구조에 관한 실험에 집중했다.
 
이를테면, 작품 〈Data Cabinet〉(2020)은 얼굴 군상의 디지털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제작된 일종의 ‘데이터 보관함’이다. 이 작업은 전작인 〈Face De-Perception〉의 데이터 레이어를 재분할하고 데이터 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 내기 위한 데이터 수집과 변환의 과정을 아카이빙 한다.


장진승, 〈Data Cabinet〉, 2020,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ABS 필라멘트 ©장진승

총 4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캐비닛은 각각 4명의 얼굴에 대한 데이터의 수집물로 구성된다. 여기서 얼굴 데이터는 2개의 3.5인치 디스플레이와 스피커 그리고 3D 프린트로 저장되어 물리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첫 번째 디스플레이는 얼굴의 평균값 데이터 수집 방식을, 두 번째 디스플레이는 그 평균값의 데이터를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 신호로 변환한 시각 데이터를 상영한다. 스피커에서는 동일한 데이터를 청각 데이터로 변환한 결과물을 재생하며, 3D 프린터를 통해 인쇄한 얼굴 군상은 평면 데이터 값으로 저장한 얼굴 정보를 기반으로 어떻게 디지털 데이터를 아날로그 데이터로 복구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결과값 중 하나이다.
 
이러한 작업은 전작에서부터 이어왔던 인간의 인지구조 상에서 형성되는 편견 레이어를 제거하기 위한 시도의 연장선에 있는 동시에, 얼굴이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탐구하는 ‘데이터 간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로도 이해할 수 있다.

장진승, 〈C-MP-MUTATIONEM(L-85-17-J)〉, 2020, 3부작 4K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장진승

한편, 시각예술가 이은희와 협업한 세 편의 영상 시리즈 ‘Decennium Series’(2020)는 오늘날 기술 현상의 토대에 미래적 서사를 덧붙임으로써 상상된 미래 사회에 대한 사회적 이슈와 논의를 다룬다. ‘인종,’ ‘노동,’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갖는 세 편의 영상은 SF적인 전개를 통해 테크노 사이언스의 미래 서사를 그려낸다.


장진승, 〈THE FIRST KID〉, 2020, 3부작 4K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장진승

첫 번째 에피소드 〈C-MP-MUTATIONEM(L-85-17-J)〉는 2030년, 피부색을 변환하는 생체공학 기술이 발명되어 기존의 인종 차별이 의도치 않게 사라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인류의 모습을 그린다. 두 번째 에피소드 〈BEFORE TERMINATION〉는 택시가 사라지고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계 생태 시스템이 강화된 사회에서 사회와 기업의 윤리적 책임 속에서 갈등하는 ‘원격 대리 운전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에피소드 〈THE FIRST KID〉는 데이터 기반의 미래 예측 시스템에 의해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어느 쪽이 더 발달하고 특성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받게 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이 세 편의 영상을 통한 SF적 상상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가며 도래할 근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유도한다.


장진승, 〈Deluded Reality〉, 2021,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13분 26초 ©장진승

이듬해 선보인 〈Deluded Reality〉(2021) 또한 작가의 SF적 상상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상 작품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점에서의 인지적 경험을 ‘망상 현실(Deluded Reality)’로 풀어낸다. 영상은 디지털 게임 속 캐릭터가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획득하게 되면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인지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안에서 캐릭터는 그래픽으로 구성된 세계 속 ‘나’의 위치와 존재를 감각하게 되고, 주어진 시공간을 넘어서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후 영상은 실험실 같은 공간의 유리창 너머에서, 다른 차원에 존재할 ‘그’와 닮은 존재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나’들의 모습이 등장하며 마무리가 된다.


《L·A·P·S·E》 전시 전경(씨알콜렉티브, 2022) ©씨알콜렉티브

나아가 장진승은 2022년 씨알콜렉티브에서 열린 개인전 《L·A·P·S·E》에서 테크놀로지로 인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와 시공간의 선형적 배열이 해체된 탈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작가는 시간의 선형적 배열 법칙 안에서 그 길이를 임의로 줄이거나 늘리는 타임랩스, 하이퍼랩스, 슬로 모션과 같은 촬영기법의 개념을 빌어, 시공간의 두 지점 사이의 흐름과 확장 혹은 축소하는 간극에서 벌어질 법한 시뮬레이션을 실험하고자 했다.


장진승, 〈L·A·P·S·E〉,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23분 2초. ©장진승

영상에 등장하는 로봇의 프로토타입은 뼈대와 외피가 나뉜 형상으로, 인간의 골격과 그것을 덮고 있는 조직을 모방하는 휴머노이드이다. 장진승은 휴머노이드나 가상 공간을 구성하는 입자를 AI 파티클(particle)로 명명하고, 이것이 결국에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존재하며 스스로 움직이고, 자유 의지를 지니게 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AI 파티클로 만들어진 가상의 시공간을 설정했다.
 
그렇게 창조된 시공간의 어느 부분에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일으키는 기묘한 정서나, 인체를 모방했지만 일부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도 인간의 당연한 움직임을 재현하리라는 기대에 도달하지 못하는 대상이 존재한다. 또한 영상 속 인물과 로봇, 여우와 비슷한 동물은 생명체 혹은 비생명체로 규정지어지지 않는다.


장진승, 〈L·A·P·S·E〉, 202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23분 2초. ©장진승

영상 속에서 이들은 인간과 같은 본능과 감각으로 일이나 행동을 처리하는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재가 아닌 입력된 값으로 출력되는 프로세스를 통해 움직이는 존재이지만 점차 자신의 일에 의구심을 갖거나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간 상황을 그려낸다. 특히 로봇은 주어진 역할이 가중되고, 경계가 흩어져 무의미해진 상황에 당면하며 기계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이러한 설정 안에서 현실이나 완전한 생명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시공간이나 인간, 로봇의 레이어가 중첩되면서도 완전히 융합되지 않은 과도기적 혼종성(hybridity)를 보여줌으로써 인간 중심주의가 해체되는 지점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장진승, 〈퍼펙트 콘트랩션 컨셉: 투명 올레드 스크린을 통해 실현하는 모빌리티 & 시티 자동 운용 시스템 시나리오〉, 2022, 혼합매체, 가변크기 ©장진승

이렇듯 장진승은 가속화된 기술 발전과 함께 점차 흐려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사실 같지만 사실 같지 않은 현실과 상상이 불분명하게 뒤섞인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며, 근미래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갈 미래인류의 인식 및 인지 구조를 상상하게 한다.
 
또한 현재를 토대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리는 그의 작업은, 현재의 왜곡된 인식들을 다루며 새로운 감각을 통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상호 이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저는 현재를 토대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고 일종의 서사를 통해 현재의 왜곡된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각각의 작업을 하나의 시뮬레이션이라고 보고,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인간의 인식 및 인지 구조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장진승, 2022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 작가 인터뷰 중) 


장진승 작가 ©퍼블릭 아트

장진승은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를 수료했다. 개인전으로는 《스크리닝: 잔잔한 돌풍》(금천예술공장, 서울, 2024), 《L·A·P·S·E》(씨알콜렉티브, 서울, 2022), 《Réalité Simulée 리얼리티 시뮬레이션》(온수공간, 서울, 2021), 《OLIGOPTICON》(공간:일리, 서울, 2020)이 있다.
 
또한 작가는 《합성열병》(코리아나미술관, 서울, 2025), 《서울의 찬가》(아트스페이스 보안1, 서울, 2023), 《Horizontal》(노블레스 컬렉션, 서울, 2023), 《디지털 공명》(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광주, 2022), 《퍼블릭아트 뉴 히어로》(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청주, 2021), 《사적인 노래 I》(두산갤러리, 서울,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장진승은 금천예술공장(서울, 2024-2025), Masaha Residency(리야드, 사우디아라비아, 2023),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고양, 2022) 입주작가로 활동하였으며, 2020년 현대자동차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ZER01NE 크리에이터 및 ‘퍼블릭 아트 뉴히어로 2020’에 선정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