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이건정

전시는 도서관 한편에 기대어 있다. 책 속 이탤릭체 문장의 구별처럼 기울어짐만으로 호흡을 바꾸고, 흐름을 지연시키고, 분위기를 만든다. 이탤릭체의 의미와 용도 - 밑줄에 상응하는 강조된 단어 또는 문장, 인용구, 다른 나라의 언어, 의성어와 의태어, 편지 마지막 줄에 남기는 추신 - 같이 송민정의 작업이 도서관에 놓인다.

우리는 이 하루를 ‘이탤릭체 시간’이라 부르기로 한다. 하루는 지난 작업의 시간과 기억을 회상하고 지금의 시간과 자리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빙그르르 돈다. 도서관에는 송민정의 〈JOE〉(2021), 〈분위기〉(2023)와 더불어 지난 작업에서 떼어오거나 단서 삼은 작업들이 있다. 지난 작업의 맥락과 분리된 배경, 새 장에 놓이며 이탤릭체 단어/문장처럼 강조된 이미지/장면으로 작동한다. 다시 깜빡이며 다음을 향한 신호를 준다. 《이탤릭체 시간》은 지난 전시의 이후, 다가올 전시의 이전에 놓인 무어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잠재적 시간, 산과 산 사이 위치한 골짜기의 시간을 닮았다. 이 시간은 에너지를 비축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존재한다.

송민정은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책장 한 켠에, 책과 책 사이에, 낱장의 종이에, 저마다의 책에 집중한 사람들 틈에 작업들을 기대어 둔다. 관객은 어린 시절 미로나 보물찾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도서관 곳곳의 작업을 찾아 나선다. 전시는 도서관에서의 헤맴, 무수한 도서 목록들 사이에서의 길 잃음, 목적지의 이탈을 되려 즐거이 여긴다. 찾아 나선 작업을 놓치고 도중에 눈에 띈 새로운 책과 장면을 만난다면 그건 다른 의미로 좋은 일이다. 언젠가 우리는 이 예기치 못한 시간 속에서 큰 기쁨을 얻은 적이 있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