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Commission: Mire Lee: Open Wound, Installation View, Photo © Tina Kim Gallery

나는 열두 살 그 근처부터 죽음에 포위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이상하고, 우울하고, 특별하고 아주 보잘것없다. 몸에 구멍이 아주 많이 생겨서 연민의 정서가 세계를 향해 무한히 열린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원했던 게 맞긴 하지만 그건 또 병증으로서 명시된 채 존재하는 우울증의 초기 증상이라고 어디서 읽었다.

나는 끊어졌다. 솔직하게 쓸 수 없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솔직하게. 솔직하게 햇빛을 좋아하고 음식을, 섹스를, 칭찬받는 것을, 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누군가를 파괴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아름다운 사람에게 파괴당하는 것을, 사랑받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처럼 나도 그런 게 좋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만 있다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좋다고, 너무 좋다고 다 솔직하게 말해버릴 수만 있다면. 더이상 사랑받지 않는 것보다 사람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일은 없다고 했다.

뭔가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슬프다. 왜냐하면 뭔가를 가진 사람들만이 패기 있게 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넘치게, 인간 세계의 다른 모든 것을, 덩달아서 기쁨을. 어제 그 남자애는 맛있었다. 몸에서 나는 어린 사람의 비린내나 애들이나 치는 장난도 귀엽고 사정시키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 애는 그렇게 어리고 보석 같을 때 많이 아껴주고 예뻐해 주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갈변해버릴 아주 고운 빛깔을 가진 야채와도 같은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무섭다. 언제든 나를 거절할 수 있다는 게 짜릿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살아있는 어린 애들은 더더욱 무섭다.

그건 나를 나이 들게 느끼게 해, 나를 비참하게 느끼게 해, 나를 아름답지 않게 느끼게 해. 그들은 뭔가를 감지하긴 하지만 삶의 어두움이나 비참함을 함께 보지는 않는다. 흐린 눈을 갖고 있어도 그들은 괜찮다. 그들은 가차 없다. 그런 시선에 포착되는 일은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처럼 무섭고 짜릿하다. 덩어리, 구멍, 반죽, 무더기, 구덩이를 쳐다보게 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말을 걸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축축하게 젖어서 미끌미끌한 것들은 손에 단단하게 잡히지 않고 미끄러지거나 허물어진다. 어두운 안쪽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젖은 채로 꿈틀거리는 것들은 말들과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해하거나 이해받는 것과도 관계가 없다. 세상의 어떤 것들은 말을 할 줄 모르니 말을 걸지도 말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무섭지만, 손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런데 그건 방금 번개처럼 벌어진 상처 같기도 하다. 얼마나 깊을지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눈길을 줄 수가 없다.  알고 있고 급박한데 그걸 바로 보지는 않고 있다. 왜 그렇게 하겠는가. 그렇게 하면 삶이 끝나버리는데 내가 왜 그렇게 하겠는가. 오늘 읽은 시에선,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것들을 쏘아보라고 했다. 이를테면 태양을, 죽음을. 새로 사귄 대만에서 온 친구는 얼굴이 약간 뒤틀어졌다.

새로 사귄 아일랜드에서 온 친구에게 대만 친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다고 했더니 아일랜드 친구는 그건 그 대만 친구가 장애인같이 생겨서이냐고 되물었다. 우리는 불편한 기분을 느끼면서 크게 웃었다. 똑바르게 대칭되지 않는 것들은 정말 무섭다. 이를테면 자궁이 그렇다. 이를테면 프릿즐 케이스 [1]가 그렇다. 손으로 반죽해서 만든 것만 같은 지하실의 굴곡은 정말 무섭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렌더링한 표면의 매끄러움이고 갓 나온 커스터드 푸딩의 흔들림 [2] 이다. 그런 것들은 죽음을 잊게 해준다. 우리는 유기적인 것을 무서워한다. 그건 당연하다.

진짜로 유기적인 세계에선 인간의 소꿉놀이들을 다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당황하는 얼굴, 격앙되는 분위기나 눈물이 찔끔 날 뻔한 것, 이상한 의기양양함, 영원히 비밀에 부치는 상상. 수치심, 무엇보다 수치심. 가장 최근의 수치심을 머릿속에서 갱신하는 일, 그런 수치심을 흐리게 만드는 방법은 항상 더 큰 수치를 생산하는 것. 말하자면 삶이 아닌 것들 때문에 공포에 질리거나 삶 때문에 수치스럽거나 둘 중 하나만을 사는 것. 하지만 나는 삶 속에 있다. 게다가 나는 삶의 모든 좋은 것들을 원한다.

그저께 방문한 전시 사이트가 너무나 방대하고 멋이 있어서 무척 흥분했다. 엄청나게 남성적이고 엄청나게 힘이 좋은 기계 같은 생각과 기획들로 머리가 빠글빠글해졌었다. 이건 너무 이상한 느낌이어서 마치 정액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자지를 엄청 힘겹게 부여잡고 있는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다는 걸 누가 볼까 봐. 내 야심이, 정액이 사방으로 다 튀어서 들켜버릴까 봐. 혼자 운전을 하다가 엄마 살려주세요 하고 작게 말한 일도 있었다. 밤엔 연인이 샤워하는 사이에 여자친구의 블로그를 읽고 난 다음 섹스를 했는데 내 머릿속에는 이상한 연대감, 배덕감, 픽셔널리티가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나를 위해 일해, 더 많이 하고 더 잘해, 그러니까 많은 여자들이 어쨌든 남자들과 섹스를 하는 그 당시에는 그것이 모종의 복수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래 봐야 두 쪽 다 부드러운 몸을 가진 인간들이기 때문에 뭘 해도 귀여운 수준이다. 사랑해도 역시 호시탐탐 여러 명의 사람들과 자고 싶어 하는 것, 그들을 침대로 데려와서 옷을 다 뱃겨놓았을 때 그 사람들을 정복한 느낌에 아주 만족하는 것. 사람들이 인간이기를 조금 포기하는 그 순간들을 목도하는 게 정말 좋다. 그런 순간들은 아름답고, 그걸 보며 뭔가를 이해하고, 그럴 때면 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결과로 사실 당장 내일 임신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는 당연히 암스테르담에 가서 미프진을 먹고 낙태를 할 것 같다. 그리고 일단은 멀쩡하다는 듯이 작업을 계속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무슨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독립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나와 멀다. 항상 외롭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항상 심심하고 항상 텅 빈 기분에 시달렸다. 그건 친구들이 많았어도 적었어도 늘 그랬다. 사실 나는 항상 너무나 외로워서 죽고만 싶었다. 스스로에게 가장 익숙하고 축축한 세계는 자위하기 전 벌건 눈으로, 초유의 집중력과 인내심으로 포르노그래피를 뒤지는 시간이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 생각이 나거나 죽는 생각이 나서 무서워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분은 텅텅 비고 우스꽝스럽다. 어떤 일들은 왜 전혀 멈추어지지 않는지를 모르겠다. 70살이 되어도 헨타이를 보면서 자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니메나 비디오가 재생되기 전 짧은 순간 검은색이 된 스크린 안에서 내 얼굴을 본다. 다양한 삶들, 다양한 삶들. 어떻게 살았어도 이 세계로는 계속해서 다시 돌아갔을까 어떻게 살았어도 결국 나는 나의 어떤 얼굴을 반드시 짓뭉개고 싶어 했을까. 가끔 약에 취했을 때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에게 뭔가를 사주고 엄마를 어딘가에 데려가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아랍 에미리트에 전시가 생겨서 두바이에. 그 안에서 나는 엄마를 완전한 노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털목도리나 가방 같은 것을 사주는 생각을 해보는데,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노인에게 고양이를 안겨주는 것 같은 기분이라는 것. 그러니까, 적는 것도 너무 괴롭지만, 엄마에게 10년이 남았을까, 20년이 남았을까, 라고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시작하면 나는 너무 슬퍼서 와락 눈물이 나버리고 만다. 엄마. 또 미래를 그릴 때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이상하게도, 슬프게도, 벌써 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도, 아니면 한심하게도, 타협주의적이게도, 작은 인간임이 분명하게도, 지중해의 햇살이나 대마 농장이나 큰 털개 두 마리나, 문어요리를 먹는 상상이나, 담뱃갑과 주전부리들, 책 몇 권이나 과일이 흩어진 테이블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썬배딩을 하는 장면이나, 그런 것들만 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태양이 아직도 있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한편엔 불을 지르는 것에 대한, 터지기 직전인 것에 대한, 줄줄 새는 것에 대한, 누가 나의 어깨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드는 것에 대한, 얼굴이 부르트게 울고 있는 것에 대한(어쩌면 기뻐서),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나 정체화만이 현재의 나를 지탱한다는 게 너무나 위선적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만 이끌리고, 그런 사람들만을 구원하고 싶고, 아니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망하는 것 만이, 그런 상상만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 아주 예전에 어떤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몰래 등에 날개를 길러온 소녀의 이야기 [3] 였다.

성인이 된 소녀는 날개를 들킬까 봐 정상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고, 날개가 돋아난 게 진짜인 걸 감추기 위해 서커스단에 입단했다. 그녀는 공중에서 날았다. 사람들은 낚싯줄이 보이지 않는다며 신기해했다. 그건 그러니까 서커스를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일이다. 그게 퍼포밍이 아닌 걸 들키면 큰일 나는 그런 일이다. 하지만 너무 진짜처럼 보여 결국엔 의심을 샀기 때문에 이야기의 끝에서 그녀가 추락했어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1] 오스트리아에서 Josef Fritzl이라는 남자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 지하실을 개조해 던전을 만들고 그곳에 친딸을 24년 동안 감금 및 성폭행해 7명의 자녀를 낳게 한 사건이다. 2008년 피해자가 탈출에 성공하며 세간에 알려졌다
[2] Wayne Koestenbaum, 《Hotel Theory》, (New York, Soft Skull Press, 2007), 7. 
[3] Angela Carter, 《Nights at the Circus》, (United Kingdom, Chatto & Windus, 1984)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