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리, 〈마주〉, 2023, 퍼포먼스 © 노혜리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낮은 크기의 오브제, 실같이 늘어진 재료에 알알이 끼워진 구슬, 돌과 노끈, 점토로 만들어진 비정형의 사물들이 무대 위에 세워져 있거나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퍼포머이자 작가인 노혜리와 루카스 야스나가는 돌로 나무를 문지르거나, 돌을 바닥에 조심스레 던지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섬세하게 접촉시키며 사물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사물들은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다성의 행성적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풀피리 소리, 전자음, 나무와 나무의 부딪힘, 바닥을 긁는 소리, 통처럼 생긴 오브제를 뜯는 소리, 이 모든 소리의 교차는 마치 사물들의 극적인 교신 상황을 연상시킨다. 사물 각 개체의 에너지와 정보는 소리를 통해 수평적으로 교환되는 듯하다. 다시 말해 여러 사물 존재들의 촉수적 연결, 그리고 여러 사물 종들이 벌이는 ‘실뜨기’(string figure) 행위가 소리를 통해 소환된다.
 
앞서 진행했던 노혜리의 퍼포먼스 〈진희와 지니〉가 작가가 입양한 삽살견 ‘지니’와 길고양이가 된 두 퍼포머의 몸, 엄밀히 말해 ‘동물이 된 몸’과 ‘동물의 몸’, 그리고 그들(동물)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라면, 〈마주〉는 사물이 된 몸, 혹은 사물 그 자체에 집중한 것이다. 다시 말해 퍼포먼스 〈마주〉는 사물과 신체 행위가 맺는 관계성에서 나아가, 사물 그 자체의 퍼포먼스이다. “나는 고체이고 액체이며”… “나는 밀가루이고 종이이고 풀이며,… 며칠 동안 적셔지고 찢기고 섞인 다음, 캐스팅 되었다.” 노혜리의 퍼포먼스에서는 나는 객체화된 사물이 되고, 동시에 사물은 나의 몸과 동맹 관계를 맺는다. 즉 〈마주〉에 등장하는 사물은 대상화된 어떤 것이 아닌, 나의 몸과 긴밀하게 연계된 이행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다. 여기서 인간과 비인간(사물)의 범주적 경계는 보다 유연해지고, 나아가 서로 횡단한다.
 
노혜리의 퍼포먼스에는 타자성을 끌어안거나, 아니면 그 타자성 자체를 무화시켜버리는, 그리고 타자가 있던 자리에 나를 기꺼이 내어놓는 절대적 포용의 시선이 내재되어 있다. 나이가 많고, 크고, 뚱뚱하며, 병에 걸렸고, 혈통 인증이 안 된 삽살개라는 이유로 오랜 기간 입양되지 않았던 삽살개 ‘지니’에 예술적 시선을 투사하고 지니의 관점에서 퍼포밍하는 것, 그리고 사물을 사용적 가치로부터 탈각시켜 나의 몸과 존재론적이고 유기적인 동맹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 사물은 그들만의 우주를 형성하고 자신들만의 에너지를 소유하며 독립된 삶을 영위한다. 비인간의, 동물의, 사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내뿜는 생기와 에너지를 공유하려는 노혜리 퍼포먼스는 다른 존재들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