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희 ‘공포스러운 비극에 주목’
심리적 외상 들춰내 ‘초혼’하면서
묵시록적 상황서 희망 발견하기도
송상희는 근대성, 근대주의의 징후들과 그것이 내면화시킨 인간적 억압을 진단하고
낙인처럼 각인된 심리적 외상을 들춰낸다. 가부장 체제를 불신하고 남근적 주체들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역사의 희생자와 피해자, 권력 밖에 위치한 여성, 소수자, 하위주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직시하는 체제/제도/문명 비판자로서 그는 재앙적 학살, 강요된 성노동 등 공포스러운 비극의 역사에 주목한다.
송상희의 초기 작업은 부계적으로 운명 지워진 여성의 현실을 풍자한 페미니즘으로 일관됐다.
숙녀가 되기 위한 몸가짐과 착한 딸의 환상을 훈육당하는 몸으로 패러디한 ‘성공을 위한 몸 보정기’(2001)와
‘착한 딸이 되기 위한 몸짓’(2001)에 이어, 본인이
모델이 되는 일련의 연출사진을 통해 다양한 국면의 여성상을 재현했다. 온몸을 양면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은 채 바닥을 구르며 집 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닦아내는 ‘바닥 청소’(2002), 강요된 침묵에 의해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동두천 유흥가의 여성을 연기한 ‘동두천’(2005)은 각각 가정과 거리의 여성을
대변한다. 월미도 부둣가에서 한쪽 팔에 의수를 단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버스 안내양은 가부장제에서 길들여진
순종적 여성을 표상한다.
2006년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이후,
유럽 문화권에서 인식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된 작가는 나, 여성의 문제로부터 세계를 대상으로
주제적 관심을 확장하고, 드로잉, 텍스트, 사운드, 영상 등 복합매체를 전격 사용함으로써 작품세계의 일대 변화를
맞게 된다. 특히 현장 실사, 자료 수집, 연구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전방위적 리서치가 내용과 양식 면에서 규모가 달라진 작업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변신의 물꼬를 튼 ‘변신 이야기 제16권’(2009)은 총 15권으로 구성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의 마지막
권으로 편찬된 창의적 야심작이다.
태초 피조물들의 진화적 변신 과정을 신과 인간의 사랑, 욕망, 배신, 복수의
이야기로 은유한 고대 신화의 후속판답게, 작가는 태곳적 심해를 유영하는 상상의 생명체들, 인간, 공룡, 고래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파국으로 끝나게 되는 낯선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석유자본과 국가권력이 생태계를 위협하고 인간의 오만과 무지가 결국 지구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 종말론적 서사는 작가의 섬세한 연필 애니메이션과 서정적 내레이션으로 그 중압감을 덜어낸다.
‘변강쇠歌: 사람을 찾아서 2016’(2015~2016)은 한국 민담 변강쇠와 옹녀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상설치 작품이다. 떠돌이 변강쇠와 저주받은 옹녀, 점쟁이, 악사, 각설이패 등 사회로부터 추방된 유랑민들의 설화는 작가가 지금도
소외의 삶을 사는 전쟁포로, 일본군 위안부를 만나 스케치하고 인터뷰한 영상과 병치됨으로써 초시제적 대하
서사로 탈바꿈한다. 1983년 KAL기 격추 사건을 사할린
바다에 을씨년스럽게 떠 있는 신발들로 재현/재연한 ‘신발들’(2011)이
예시했듯이, 그는 세월호 희생자, 지중해 난민 등 특히 해상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의 현장을 찾아 영상과 텍스트로 아카이빙하는 일종의 초혼 행위를 통해 무고한 죽음을 애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발표한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2017)는
송상희의 모든 역량이 집결된 총체적 영상설치 작업이다. 현장 탐사와 자료 리서치가 광대해지고, 내러티브의 정치적 메시지와 미학적 수위가 심화되었으며, 아카이브
필름, 다큐멘터리 자료사진과 비디오, 연필 드로잉, 텍스트, 사운드로 공감각적 몽타주 환경을 창출했다.
독일과 폴란드의 강제수용소, 네덜란드에 남아 있는 2차 세계대전 벙커들, 한국과 해외의 원자력발전소들을 답사하고 현지
촬영한 장면들이 분리된 3개의 대형 화면에 교차 상영되는 가운데 관객은 핵전쟁, 아우슈비츠의 집단학살, 탈출선의 난민 살해, 아기농장의 인체실험들이 증언하는 이성과 윤리의식의 추락을 통감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묵시록적 상황이 새로운 생성 에너지의 시작이라는 기대와 믿음으로 아기장수 설화를 도입한다. 부모와
국가에 의해 두 번 죽임을 당하지만 결국 다시 또 살아나는 아기의 초능력을 종말 이후의 구원 가능성으로 예견시키는 데자뷔적 해석에서 여성적 치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애적 모성을 발견한다.
4. 김아영의 ‘사변적
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