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 view of The Orchids(2024) by Jiwon Choi © WESERHALLE

베를린의 전시공간 베저할레(Weserhalle)가 한국 작가 최지원의 독일 첫 개인전 《Following the Curves》를 개최한다. 정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띠는 회화로 주목받아온 최지원은 이번 전시에서 도자 인형, 장식적 식물, 그리고 가정의 잔재들이 기억과 각성, 생과 사의 경계에 머무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의 요소들을 혼합하는 그녀의 작업은 일상의 연극성과 정서를 포착한다. 장식미술의 언어와 조상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작가는 과거의 삶을 은근히 반영하는 도자 인형들을 화면에 등장시킨다. 한때 버려지거나 간과되었던 이 인형들은, 흔들리는 난초와 가느다란 풀잎 뒤에서 조용히 깨어난 듯한 모습으로 사적인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부재와 존재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대화를 반영한다. 각 작품은 자연과 인공, 친밀함과 기이함이 교차하는 방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기억의 반사적인 표면을 닮아 있다. 윤기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트하고, 정지된 듯하지만 움직일 것 같은 역설적 감각이 그림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이는 마치 할머니 집에 울려 퍼지던 종시계의 희미한 울림처럼, 시간의 탄력성과 순환성을 암시한다.

전시에서 난초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모티프로 기능한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피고 지는 난초는 그 부드러운 곡선과 색의 그라데이션을 통해 회화적 구성 요소로 변환된다. 난초의 가느다란 줄기들은 인형 같은 인물을 부분적으로 가려, 관객과 화면 사이에 절제된 거리감을 형성하며 마치 사적인 순간을 엿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이미지는 단순한 시각적 구성이 아니라, 갈망과 고독, 회복력에 대한 시적이면서도 일기적인 기록이다.

최지원은 자신의 작업을 “아름다움, 치유, 슬픔, 공허함이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전시 속 인물들은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기억의 그릇으로서 존재하며, 상실과 우아함이 교차하는 다층적 감정을 담아낸다. 그녀의 회화에서 아름다움은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사유적이며, 매력은 기묘함과 정적 긴장 속에 숨겨져 있다. 이 섬세하고 낯선 구성은 마치 반쯤 잊힌 꿈처럼 잔상을 남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친 최지원은, 생명이 없는 사물을 살아 있는 듯 묘사하는 회화적 언어를 개발해왔다. 절제되면서도 즉흥적인 붓질은 조각이나 부조처럼 착시를 유발하며, 가까이 들여다보면 인형들의 시선 속에서 감춰진 감정과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써내려가는 시각적 일기의 한 장면이다. 그림자진 잎사귀와 도자기 피부의 반짝임 사이에서 향수가 싹트고, 미래의 자아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 공간은, 모호한 아름다움과 조용한 깨달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정원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