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0인칭의 자리》, 2021.08.19 – 2021.09.11, 디스위켄드룸
2021.08.15
디스위켄드룸
《0인칭의 자리》 전시 전경 ©디스위켄드룸
디스위켄드룸은 8월 19일부터 9월 11일까지
이목하, 최지원의 2인전 《0인칭의 자리》를 개최한다. 『0인칭의
자리』는 여러 주체의 시선을 중첩시키며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는 경험을 다루는 윤해서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전시에서 두 작가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접경지대에 머무르며 수집한 장면들을 토대로 동시대의 개인들이 가질 공통의
정서를 이끌어낸다.
《0인칭의 자리》 전시 전경 ©디스위켄드룸
이목하는 그의 일상 영역 밖에서 존재하던 것들을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인다. 온라인에서 습득하거나 주변 지인들이 찍은 사진 등을 무작위로 수집하고 선택한 후 이를 노동집약적인 그리기의
행위로 연결한다. 회화가 촘촘한 붓의 움직임을 거쳐 완성의 지점에 다다랐을 때 이미지의 원본은 이미
작가에게서 저만치 달아나 있다. 대신 색의 촘촘한 레이어에 갇힌 대상의 표정으로부터 미세한 감정이 새롭게
발현되며, 작가는 그려진 형상으로부터 거리감과 기시감을 동시에 감지한다.
최지원은 매끈하게 빚어진 가상의 오브제를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표현된 대상은 실재하는 사물이기보다 평면의 장 위에서 재현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데, 이것은 그들이 인간과 유사한 감각의 분출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작지만 검게 채워진 눈동자는 관객과 시선을 맞추려 들지 않지만 또렷하게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으며, 붉은 입술과 상기된 볼의 색번짐은 내면의 감정적 동요를 반증하는 듯하다.
이쯤에서 어떤 이는 두 작가가 그리는 것이 누구인지 물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명확한 이름을 가진 자가 아니며, 따라서 앞선 질문은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 앞에서 유효하지 못하다. 익명성을 띠는 가면에 감추어진 인상들, 어두운 조명과 흐릿한 색의 장막에 가려진 실루엣은 특정한 이를 위한 초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지칭하지 않는 인간의 형상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감정과 슬며시 겹쳐진다. 그렇다면 관람자에게로 전이되는 무형의 에너지는 어디서 발현되는 것일까.
《0인칭의 자리》 전시 전경 ©디스위켄드룸
표면적으로는 상이하지만 두 작가가 사용하는 빛의 수사에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요컨대 각자가 주관적인 원칙에 따라 광원을 다루는 방식이 중립적인 의미의 형태들을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신호들로 변환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이목하의 화면에서는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 듯한 강렬한
빛과 어둠 속으로 밀려난 풍경 사이의 대조가 도드라진다. 그리고 이는 회화의 역사에서 극적인 빛의 효과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긴장, 슬픔과 고뇌를 재현하고자 했던 많은 선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최지원은 광원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 만큼 납작한 양감과 화려한 패턴의 배경을 선택하면서도 인형의 피부에
맺히는 반사광과 옅은 반짝임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묘사한다. 덕분에 관객은 깨질 듯한 삶의 연약함과
긴장감을 떠올리며, 화면 앞에서 마치 유리를 손에 쥐고 있는 듯한 현재의 선명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빛의 재현이라는 회화의 근원적인 과제는 각자의 화면 위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또 한번
수행된다.
두 젊은 작가가 포개어 가는 서사 속 상징들은 어쩐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 선
우리 모습을 닮았다. 둘은 빛과 어둠, 나와 너, 현실과 꿈 사이를 왕복하며 채집한 이름 없는 이미지의 조각을 그러모아 다수의 것으로 승화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려낸 형상들에 이름을 붙이길 잠시 유보할 때, 비로소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의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