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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스산한 숲속에서 마주친 존재로부터 시작되는 서사, 윤미류 개인전 《당신은 늪이 무서운가요?》
2024
리아뜰 매거진

《Do Wetlands Scare You?》 전시전경 © 파운드리 서울
하늘을 가릴 듯이 뻗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깊은 숲.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땅은 진흙으로 질척거리고, 여러해살이풀이나 갈대 같은 식물이 고인 물에 높이 자라 있다. 늪이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곳. 두려움에 사로잡힌 누군가는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그때 늪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왔다.

윤미류, 〈Ghost Steps〉, 2024, 캔버스에 유채, 259.1 x 193.9 cm © 윤미류
긴박한 상황에서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 어떨까. 공포심이 극에 달하여 온몸이 옥죄인 그 누군가를 향해 무엇인가가 다가온다. 괴물로 변한 물의 요정 낵키Näkki가 사람을 위협할까. 초록색 긴 머리에 반짝이는 눈과 미끄러운 여성 몸을 가진 슬라브 신화 속 루살카Rusalka가 사람을 유혹하여 물속으로 끌어들일까.
이렇듯 스칸디나비아와 게르만 문화권에서 전해지는 설화 혹은 신화에서 유혹적이거나 파괴력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는 영적 존재가 생명력과 죽음이 뒤섞인 늪에서 벌이는 사건 혹은 상황을 상상하도록 이끄는 전시가 열렸다. 회화 작가 윤미류는 개인전 《Do Wetlands Scare You?》를 선보이는 파운드리 서울의 전시 공간을 거대한 늪으로 설정하였고, 그곳에 들어선 관람자는 회화 속 인물을 마주 응시한 채로 몰입하여 매력적인 단서를 찾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형 회화 작품마다 등장하는 인물은 작가의 친구들이다. 세 여성은 늪이라는 공간에서 신화 속 정령이 된 듯이 연기한다. 털이 온몸을 뒤덮은 노파가 된 정령 루살카처럼 한 사람이 털옷을 입고서 서서히 물에서 나오며 캔버스 밖에 있는 관람자를 바라본다. 또는 루살카가 남성들을 유혹하여 물에서 죽을 때까지 함께 춤을 추었던 모습처럼 세 사람은 물속에서 둥그렇게 손을 마주 잡고 몸짓한다. 그저 늪으로 끌어들이는 으스스한 존재라고 여겨지던 그들이 손을 잡거나 부둥켜안고 귓속말하는 모습은 색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작가는 특유의 시원스러운 붓질로 흐르는 듯한 빛과 물결 그리고 인물의 몸짓을 그려내어 생동감을 자아낸다. 휴대전화 카메라 기능 중 ‘라이브 포토’로 직접 연출 장면을 촬영한 작가는 1.5초 사이에 인물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장면을 포착하는 방식을 활용하였고, 인물이 배경과 상호작용하는 추상적인 감각을 이번 신작들에 고스란히 드러내어 캔버스 밖까지 표출하고자 하였다.

윤미류, 〈Don't Tell Anybody on the Land 1, 2〉, 2024, 캔버스에 유채, 각 130.3 x 193.9 cm © 윤미류
서늘한 푸른빛 물에 깊숙이 잠겨 서서히 드러나는 기괴한 감각 ‘언캐니Uncanny’와 캔버스 밖에서 귀결되는 신비로운 서사로 작품과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윤미류 작가. 그녀가 관람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늪이 무서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