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물》 포스터 © 인천아트플랫폼

이슬기 작가는 자신의 인류학적 관심으로부터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서 발견되는 버내큘러리티 (vernacularity)와 언어들의 본질적이거나 원형적인 요소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러한 관심을 평면, 조각, 오브제, 영상, 사운드 등의 다양한 작업 방식을 통해 자신의 조형 언어 내에 도입하고 확장해왔다.

이번 전시의 주요 개념을 관통하고 있는 〈느린 물〉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경험을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 문양의 한국 전통 기법인 문살과 부드럽고 온화한 단청 색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과 기예로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실내의 한 벽화에서 받은 영롱한 물속 경험과 인천아트플랫폼의 오래된 지리적 역사를 소환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탈리아에서 머물 당시, 어떤 환영적 감각을 자아내는 ‘빌라 디 리비아(Villa de Livia)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작가는 고대에서 가장 오래된 실내 벽화로 목가적인 야외풍경을 담고 있는 이 프레스코화에 대한 기억과 과거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곳이 바닷물이 드나들던 간척지라는 장소의 기억을 중첩시키고, 전시 공간에 넓고 느리게 흐르는 물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설치작업을 시도한다.

작가는 여러 해 협업해 온 문살, 단청, 누비 장인들과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나아가 가곡 전수자 및 금속, 염색 분야의 국내 공방과의 새로운 협업을 더하여 다양한 작업을 인천아트플랫폼의 내외부 공간에 설치한다. 강화 소창을 이용하여 인천 공방의 염색 협업을 통한 염색 설치 〈밤 그림자〉, 전통 가곡 가객인 박민희와 협업하여 인천의 갯가 노래 ‘공알 타령’을 새롭게 재해석한 음악 작업 등은 작가의 인천 리서치를 통해 완성되었다.


이슬기, 〈느린 물〉, 2021 © 이슬기

작가는 전통, 공동체, 물질과 문화에 대한 토착 조형이나 언어적 원형, 동시대 조형성, 유머와 해학, 지역과 보편을 자유롭게 연결하고 넘나든다. 원형적 요소로서의 버내큘러리티에 대한 이해, 토착적 세계관의 도식화나 형태화에 대한 통찰, 과거와 현재 사이의 다양한 시공간 사이의 자유로운 상상과 접목은 이번 전시에서 매우 신선한 시각적, 건축적 경험으로 전환되어 있다. 이번 전시 《느린 물》은 실내라는 공간 속에서 경험과 감각이 제한되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 움직이는 공감각적 리듬을 선사하며, 큰물과 너른 빛과 같은 따뜻하고도 풍요로운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