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평 개인전 《없는 그림 PAINTINGS LOST》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문헌으로만 남아있는 회화 기록에서 출발한 전시다. 예를 들어 이녕(고려)의 예성강도나 안견(조선)의 대나무 그림 등은 소실되어 지금은 전해지지 않은 그림이다.  지금은 이 그림들을 볼 수 없지만 당대의 문서를 통해 다양한 해석과 상상이 가능하다.

김지평 개인전(Kim Jipyeng Solo Exhibition) ‘없는 그림 (Paintings Lost)’, 2023. Installation view ©김지평(Kim Jipyeong), INDIPRESS

작가는 2년 전에 동명의 작품을 만들었다. 접힌 병풍들과 박물관 유리 쇼케이스로 이루어진 설치이다. 이 작업에서 겉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병풍에는 정작 그림이 없고, 유물을 보존하는데 쓰이는 유리장은 비어있다. 대신 유리 사방 면에 소실된 그림에 관한 발문, 일화, 사료 등에서 문장을 선별해 새겨, 작품이 부재하는 유리상자 속의 공간을 관객이 옛 그림을 상상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김지평 개인전(Kim Jipyeng Solo Exhibition) ‘없는 그림 (Paintings Lost)’, 2023. Installation view ©김지평(Kim Jipyeong), INDIPRESS

유리 쇼케이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1층 전시장에는 이번에는 접힌 병풍 대신 철조망으로 만든 소병(글과 그림이 없는 애도를 위한 병풍)을 새로 제작해 설치했다. 그 외에도 병풍에서 떼어낸 영인본 회화로 만든 산수화첩, 전시 주제와 관련한 문자도 등으로 드문드문 이어져 온 미술사와 현재 ‘동양화’의 의미를 되짚는다.

김지평 개인전(Kim Jipyeng Solo Exhibition) ‘없는 그림 (Paintings Lost)’, 2023. Installation view ©김지평(Kim Jipyeong), INDIPRESS

《없는 그림 PAINTINGS LOST》의 ‘없음’의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1층 전시장의 인상과 다르게, 2층에서는 다양한 색채로 이루어진 그림과 병풍들을 전시한다. ‘장황’의 각 부분을 여성의 옷에 빗대어 부르는 관습을 더욱 자유분방하게 확장한 병풍 연작, 신사임당 산수화의 제화시를 바탕으로 ‘우연히’ 그려진 그림, 무의미를 지시하는 문자도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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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는 잃다, 상하다, 사라지다, 잊다, 지우다로 다르게 말할 수 있다. 긴 시간의 압력이나 망각과 관계하는 이 ‘없음’을 ‘있음’의 자리에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무의미하기도 하다. 무언가가 ‘없다’는 것은 일종의 상실감을 낳는다. 그렇다면 그냥 그 소외에 참여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가능성, 없어서 홀가분한 자유 같은 것들. ‘부재’의 소리, 그림, 문자들이 서로 노래하고 춤추도록 자유롭게 유희해 보는 것이다. <喜희喜히>, <루루루루루>처럼 기쁘거나 슬픈 그림(글자) <허,무,공 虛, 無, 空>과 같은 무의미를 지시하는 문자그림, 붓을 대지 않고 그린 산수화 ‘같은’ 이미지, 무대 위의 가수와 같은 병풍 <디바 Divas>등(...).”

(김지평 작업노트 중에서. 2023)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