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되기 이전 학생들이 세계 건축을 접할 방법은 글과 흑백사진뿐이었다. 몇몇 여행가들이 낸 세계여행 컬러 화보집이 해외 도시의 풍경을 접하는 최고의 통로였다. 그때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교수들이 보여준 거장 건축가들의 작품은 가슴을 뛰게 했었다. 교수연구실 책장에 꽂혀있었던 슬라이드 파일은 학술적 권위를 의미했다. 1990년대 들어서서 건축가들은 그룹을 지어 건축을 탐방하러 해외로 나갔다. 어깨는 무거운 카메라가 걸려있었고, 배낭에는 수십에서 수백 통의 슬라이드 필름이 들어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건축가는 별로 없다. 스마트폰으로 스냅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다. 정년을 앞둔 선배 교수연구실에서 미처 스캔하지 못한 수천 장의 이미지들이 슬라이드 파일 채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것을 본다. 국내외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슬라이드든 디지털 파일이든 이미지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더는 권위가 아니다. 엄청난 양의 이미지가 인터넷을 통하여 유포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준공된 신작 도면과 이미지를 담은 웹진이 매일 스마트폰을 통해 배달된다. 차단하려고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이미지와 정보는 우리의 일상을 에워싸고 있다.
 
나는 도면, 역사 기록, 통계를 재료로 삼아 도시와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분석적 연구보다 직관적으로 포착한 사진 한 장을 통해 우리는 도시의 실체에 즉물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찾기 위해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하고, 발품도 판다. 저작권 문제 이전에 글과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의 세계를 시각적 형태로 투사한 한 컷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기술복제시대’를 거쳐 디지털시대에 와 있지만, 사진의 ‘유일성’과 작가의 ‘아우라’는 여전히 살아있다.
 
박찬민의 새 전시 < We Built This City (2021) >는 < Intimate City (2008) >, < Untitled (2013) >, < Urbanscape: Surrounded by Space (2015) >, < Blocks (2015) > 에 이은 일련의 도시(Cities) 작업이다. 건축학자의 눈으로 본 박찬민의 사진은 자연이 뒤로 물러나 있는 도시의 중경(中景)이다. 3점 투시도 효과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올려다보는 도시 표면과 내려다보는 조감도의 중간지점을 카메라의 소점으로 잡았다. 시점은 길게 드리운 그림자, 두드러진 명암, 산광이 생기지 않는 정오 무렵이다. 스펙터클, 극적 분위기, 이벤트, 찰나적 장면을 배제한 망원렌즈로 포착한 무표정한 도시 풍경이다. 그리고 표피의 디테일이 지워진 건물은 육중한 매스로 남는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사람들을 지워버린, 나른한 정오의 초현실적 도시공간을 보는 것 같다.
 
박찬민은 근대예술의 저변에 깔린 ‘감정적 혹은 가치의 중립성’이라고 이를 표현했다. 근대주의 이전의 회화, 조각, 건축의 의미는 형태와 형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무엇이었다. 근대 프로젝트는 기의(記意)와 기표(記標)의 관계를 전복했다. 예술은 예술 외적 무엇을 표상하지 않는다. 형식과 형태의 구성적 논리, 질서, 법칙이 있을 뿐이다. 예술 작품의 가치는 전달하는 매체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이는 예술 작품이 의도, 의미, 표상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창작자가 심어 놓은 하나의 서사구조와 하나의 해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체와 객체 간의 일방적 관계가 다층적, 상호적 관계로 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난해한 이론과 지식은 습득해야 할 전제조건이 아니다. 우리는 분석하고 해석한 후 감탄사를 내뱉지 않는다. 반응은 직관적이고 동시적이다. 논리의 세계 이전에 느낌의 세계에서 먼저 교감하기 때문이다. 분해하고 분석할 수는 없지만, 박찬민의 사진에는 시선을 고정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소거하고 남은 중성의 아름다움이다..
 
사진집 < Blocks (2015) >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도가 높고, 태양이 작열하지 않고, 습도가 높은 영국의 소도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하늘 색깔, 건물과 길의 표면, 을씨년스러운 자연, 인적이 드문 길모퉁이 풍경 때문이다. 반면 의 고층건물 숲은 홍콩인지, 도쿄인지, 서울인지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 창과 문을 지운 사진은 더욱더 그렇다.
 
지난 100년간 모더니즘을 전 세계에 유포한 원산지보다 아시아의 도시가 더 근대적이라는 사실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서울과 에든버러에서 사진을 배운 박찬민에게 ‘동양적 판타지’보다 아시아 도시의 같음과 미세한 차이가 더 현실적인 주제였을 것이다. 사진에서 드러난 동아시아 세 도시의 고층건물 매스와 실루엣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벽면 타일, 글자, 에어컨 실외기, 계단 난간과 같은 디테일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동아시아 도시 간의 진정한 차이는 거대하고 과시적인 랜드마크나 아이콘이 아니라 자잘한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이 유럽 도시가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박찬민의 사진은 말하고 있다.
 
몇 장의 사진, 그림, 책으로 스타가 될 수는 있지만, 그들을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작가는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을 감내하는 사람들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스승은 젊은 지망생에게 묻는다. “출판을 거부당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작가의 첫걸음이다. 평생 출판을 못하더라도 글을 쓸 것인가?” 너무나 가혹한 질문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은 일은 누군가와 공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직업으로서 생존해야 한다. ‘공감’을 향한 열망과 ’생존’을 향한 몸부림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종이 앞뒤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는 두 세계를 마지막 장면까지 끌고 간다.
 
유튜브 조회 수와 인스타 감성이 압도하는 지금, 상업사진이나 다큐멘터리와 거리를 둔 사진작가의 삶은 외롭고 위태롭다. 그래도 매일 작업실에서 사전 리서치를 하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 라는 박찬민의 답이 돌아왔다. 지루한 반복 작업으로 밥을 먹는 장인들은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무게와 깊이는 주어진 것을 감내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인간의 궤적과 작품이 하나의 서사를 이룰 때 생겨난다고 믿는다. 박찬민의 십여 년간 이어온 도시작업 역시 그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지루한 반복의 노정(路程)일 것이다.
 
이번 전시 < We Built this City >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은 도시를 바라보는 박찬민의 관점이 더 과감해지고 내밀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상은 동아시아에서 우리 도시로 좁혀진 반면, 더 위에서, 더 멀리서 도시를 조망하고 있다. 건물, 산, 바다, 강, 도로, 다리, 고가도로, 조경을 아우르는 도시 풍경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대 도시는 욕망, 경쟁, 갈등, 절충의 집합체이다. 박찬민은 더 깊고 예리하게 이를 해부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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