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희(b. 1975)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회화 작품의 형태를 띠고 있다. ‘Lined Blue Ring Anglefish II’(2019)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로 가득 찬 수족관을 연상시키며, ‘Magritte_The Discovery of Fire’(2022)는 해가 떨어지는 대지 위해 둥둥 떠 있는 금관악기가 불에 타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무언가를 재현한 것 같지만 임선희 작가의 작품에서는 어떤 대상의 묘사가 중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붓질, 색채, 형태, 구도와 같은 조형적 요소들이 더욱 중요한 관람 포인트이다. 즉, 이러한 조형 요소들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변화를 가져오며 나아가 통일감을 갖추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Lim Sunhee, 'Magritte_The Discovery of Fire,' 2022, Oil on canvas, 91 x 61.5 cm.
작가는 그림 속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보다는 회화의 본질을 고민하며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이 고민을 평면성을 통해 풀어 나간다. 임선희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고민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평면성은 모더니즘 회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과거 전통적인 회화는 캔버스 위에 3차원적 공간을 재현하는 착시(illusion)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모더니즘 도래 이후 회화는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특성, 즉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회화 매체의 고유한 특성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임선희 작가는 평면성을 전유(appropriation)의 방법으로 표현한다. 즉, 그는 서양 회화에 사용되는 기법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지만 임선희 작가의 작품은 엄연히 작가의 관점과 해석이 담긴 ‘회화에 대한 회화’다.
Lim Sunhee, 'Lined Pink Cake and Blue Guitar,' 2019, Oil on canvas, 112 x 162 cm.
다르게 말하자면 임선희 작가는 순수한 회화적 요소를 부각하기 위해 작품 안에 들어 있는 대상들을 묘사하고 재현하는 방법을 빌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시각적 존재들의 원근을 없애고 ‘색채’, ‘형태’, 그리고 ‘붓질’을 통한 표현에 집중했다.
임선희 작가의 작품은 평면성을 강조하지만, 그 안에 공간을 구축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는 깊이가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평면과 평면이 서로 겹치는 레이어 사이의 공간이다. 작가는 이 공간을 윤곽선이나 그림자로 표현하지 않고 단계적인 색채의 변화를 통해, 그리고 선보다는 색을 활용하여 형태를 만든다. 따라서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대상들은 여러 겹의 색채로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그 형태와 색은 서로 구애되지 않은 채 자연스럽고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임선희 작가는 원근법이나 투시법을 활용한 전통적 회화에서 벗어나 평면성을 강조함으로써 동시대적 회화의 가능성을 풀어내 복합적인 미학적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임선희 작가는 회화로 이화여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9년 유아트스페이스(서울), 2015년 인천아트플랫폼(인천), 2013년 갤러리조선 등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송은, 일민미술관 등 단체전에도 다수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인천문화재단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한국영상자료원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