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Approximation” at Whistle, Seoul. (January 13, 2023 - February 25, 2023). Courtesy of Kim Jipyeong, Jazoo Yang, Sueyon Hwang, and the gallery.
작품은 과연 작가의 생각을 정확하게 형상화한 결과물일까?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는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람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전시를 열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휘슬에 개최된 “근사치”전은 2023년 1월 13일부터 2월 25일까지 동양화가 김지평, 회화 작가 양자주, 조각가 황수연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박수지 큐레이터는 예술가의 생각, 작품이 갖는 물성,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와 같이 작품을 이루는 모든 구성 요소가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제반 사항들은 일대일 대응이 불가하며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어떠한 추상적인 결과가 생긴다고 여긴다.
따라서 우리는 작품을 볼 때 작품, 작가의 생각, 그리고 작품 설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대신 약간의 추상적 상상력을 동반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가까운 ‘근사치’를 갖고 이해한다.
박수지 큐레이터에게 그러한 예술의 특성은 오히려 다양한 자율성을 선사하여 작품의 예술적 가능성을 극대화한다고 역설한다. 박수지 큐레이터는 이러한 “근사치”에 대한 생각을 그동안 인상 깊게 살펴본 여성 작가 3명의 작품을 통해 펼친다.
동양화를 전공한 김지평 작가는 동양화에 사용되는 화론이나 창작 과정, 사용된 재료와 소재 등에 주목하여 한국 전통 예술을 동시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2013년 이전 김지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작가는 ‘책가도 작가’로 잘 알려져 있었다. 당시 작가는 책가도, 화조도, 문자도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다수 펼쳐 국내 미술계에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2013년 이후 김지평으로 활동명을 바꾸면서 그동안 해 왔던 작업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업을 펼치고 있다. 김지평 작가는 현재 민담, 신화, 고문헌 등을 광범위하게 아울러 전통 사회에서 외면당했던 대상들을 조명한다.
전시에는 병풍과 드로잉 작업이 등장한다. 병풍 속에는 있어야 할 회화 작품은 없고 작품을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장황(粧䌙, 책이나 화첩, 족자에 들어가는 그림을 꾸미는 부분)이 주인공으로 나섰다. 병풍에는 배접 비단, 비단띠와 같은 부수적 역할을 했던 장황 재료를 가지고 기하학적 형태로 콜라주한 작업이 들어가 있다. 작가는 병풍 속에서 소외되었던 장황을 주인공으로 전복시킴으로써 외면당했던 문화적 의미를 조명한다.
반면 드로잉 작업에서 작가는 물, 불, 돌처럼 다양한 자연물을 지칭하는 단어에 ‘ㄹ’ 받침이 들어간 것에 주목한다. 이 드로잉 작업에서는 ‘ㄹ’을 다양하게 활용해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김지평(b. 1976) 작가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그는 보안여관(서울, 2020), 갤러리밈(서울, 2019), 합정지구(서울, 2017), 가나 컨템포러리(서울, 2013) 등에서 개인전을 연 바 있다. 단체전으로 송은, 경남도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스페이스 풀,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에 참여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는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하나은행, 환기미술관, 흥국생명, 경남도립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이 있다.
회화 작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 양자주 작가는 회화를 중심으로 설치, 라이브 페인팅, 스트리트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그는 또한 베를린, 파리, 런던, 호주 등 다양한 장소를 옮겨 다니며 작업을 펼친다. 그는 도시 변두리나 도심 속 소외된 장소에 관심을 가지고, 세월이 흐르며 도시가 만들어 낸 여러 파편들을 수집하여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오래된 건축물의 벽 부스러기, 찢어진 벽지나 부서진 타일과 같은 도시의 부산물들을 재조합하여 레진에 응고시킨 콜라주 형태의 작업을 펼친다.
작가는 낡아서 존재의 가치를 잃은 대상들 속에 담긴 세월의 흔적을 기억의 표상으로 담는다. 또한 무가치해 보이는 물질들을 작품으로 만듦으로써 파편뿐만 아니라 이 물건들이 발견된 장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전시에는 레진으로 만든 작업 외에도 대형 캔버스 작업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작가는 영덕에 있는 한옥의 흔적 옮겨 담아 작업을 했다. 그는 한옥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흙, 서까래, 갈대, 기와, 볏짚 등 다양한 요소들을 갈거나 태워서 종이 위에 드로잉한 작품을 내놓았다.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양자주(b. 1979) 작가는 소마 아트 스페이스(베를린, 2022), 스페이스K(과천, 2019), 프랑슈콩테 건축의 집(브장송, 2018), 스페이스 캔(베이징, 2014)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베를린 베타니엔, 사치 갤러리, 프리즈 런던 특별전, 제주비엔날레 2017, 노르웨이 누아트 페스티벌, 호주 캐슬메인 페스티벌, 중국 탕량 아트센터, 부산 바다미술제 등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프랑스 브장송 미술관, 코오롱, BOAN1942 등이 있다.
황수연 작가는 다양한 재료들이 갖는 고유한 성질을 이해하고 그 성질을 강조하거나 변형시키는 작업을 한다. 예를 들어 얇고 가벼운 특성을 가진 알루미늄 호일을 망치질을 통해 뭉쳐서 묵직한 덩어리로 바꾸거나 가볍고 하얀 특성을 지닌 종이를 흑연으로 빈틈없이 매워 원래 질감과 색을 변형시키는 식이다. 즉 황수연 작가는 재료와 호흡하고 겨루며, 재료를 겪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최근에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종이라는 매체를 주로 다루고 있다. 종이로 만들어진 조각은 멀리서 보면 언뜻 묵직한 대리석이나 광택이 나는 황금과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조각의 무늬와 부피를 가진 듯하다. 하지만 그의 조각은 사실은 얇은 종이를 서로 덧대고 접착해 만들어진 것이다. 얼핏 우리 눈에 보이는 작품의 이미지와 실제 작품의 질량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황수연(b. 1981) 작가는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서울, 2021), 두산갤러리(뉴욕, 2019), 두산갤러리(서울, 2019), 공간 가변크기(서울, 2017), 금호미술관(서울, 2017)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참여한 단체전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금호미술관, 아트스페이스 3, 챕터투, 두산갤러리, 제11회 광주비엔날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