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 있어서의 평면성은 모더니즘 회화가 추구해 온 핵심이자 다른 예술적 장르와 차별화 되는 독자적 영역으로서 동시대 회화를 바라보는 중요한 방향성과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임선희가 선보이는 독창적인 시도는 비객관적인 색채와 붓터치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자율적인 성질에 집중함으로써 작가만의 새로운 관점이 담긴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색채와 색채를 통한 면의 분할과 그 사이의 공간을 통해 접근한 ‘Layered Pink Cake and Blue Guitar I, II’ (2019) 시리즈는 선이나 명암을 통해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색채의 단계적 변화와 섬세하게 쌓아 올린 여러 겹의 레이어를 통해 배경을 구성하는 것이다.
또한 화면에 배치한 다양한 소재들은 전통적 원근이나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다른 굵기의 붓터치와 색채의 농도만으로 캔버스 위에 위치한 사물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서로 분리된 형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컬러의 레이어를 통해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에 반해 ‘Lined Blue Ring Angelfish’ (2019) 시리즈 작품은 굵고 얇은 선들로 이루어진 물고기들의 형형색색의 보색으로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화면에 등장한 다양한 물고기들은 각 대상들 간의 제한된 형태 안에서 여러 가지의 색채로 자신만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고 있으며, 색채와 선으로 구획된 대상들은 각 위치에서 개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주위의 다른 개체들과 어우러지면서 색과 선만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힘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단순함과 대담함을 살리면서 평면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King Charles Spaniels’ (2019)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을 보면 바탕을 납작하게 색칠한 짙은 초록색 면 위에 두꺼운 윤곽선과 붓놀림만으로 이루어진 강아지들의 시선이 모두 정면을 향해 있으며 거리와 공간에 상관없이 각 대상들의 크기는 화면에 일정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강아지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컬러의 레이어들은 원근과 공간적 개념을 생략하고 각각의 크기를 모두 동일하게 보여줌으로써 대상과 대상 간의 관계에만 관여할 뿐이기 때문에 미디어의 개념으로 바라본 회화의 평면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African Cheetah’ (2019)는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 소재들이 왜곡된 형태로 화면을 재구성하고 있다. 소파 앞에 위치한 치타는 앞발들이 실제보다 길게 묘사되어 있으며, 회색의 벽은 소파 뒤에 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어색한 듯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비교적 가볍고 두터운 붓놀림과 색채로 그려진 치타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꾸민 공간과 분위기를 배경으로 매우 생경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임선희는 점, 선, 면, 색채와 같은 전통적인 조형요소들을 ‘레이어’의 개념으로 환원시켜 표현하고 이를 선으로 구획된 회화들과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추구해왔던 동시대 회화에 있어서의 미디엄의 개념과 임선희만의 조형 어법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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