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자(b. 1974) 작가의 사진 작품은 매우 직관적이다. 작가의 사진 속에는 피사체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 대상들은 화려하거나 거대한 것이 아닌 우리가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법한 익숙한 장면들이다. 작가는 그 평범함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것들을 사진으로 짚어 낸다. 그것들은 “자리를 잃어버리거나 엉뚱한 곳에 잘못 자리 잡은 것들”이다.
정경자 작가가 작업하는 방식도 사진의 분위기만큼 직감적이다. 그는 장비를 최소화한 디지털 사진기로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을 스냅 사진으로 남긴다. 작가는 사진을 찍을 때 철저하게 준비하고 기획하기보다는 ‘우연한 조우’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면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
정경자 작가는 ‘다가오는 것을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풀어내면서’ 사진을 찍는다. 작가는 사진을 통해 세상을 ‘정의’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한 장면을 포착해 드러냄으로써 현실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잘라 보여준다. 그는 부정적인 시선, 긍정적인 시선을 모두를 벗어 던진, 아무런 의미를 입지 않은 그저 흘러가는 현실을 짚어 낸다.
하지만 정경자의 사진들은 돌연히 마주친 대상을 담고 있기에 어딘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비현실적인 감각마저 일으킨다. 장면 속에 대뜸 나타난 사물들은 쓸모를 다하거나, 예상치 못하게 등장하거나, 온전하게 기능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작가는 그와 같이 모호하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한 대상들을 담담하고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분명 명확하고 현실적인 피사체들은 이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초현실적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정경자 작가는 일상의 우연한 만남을 포착하기 때문에 전시마다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시리즈를 작업해 왔다. 또한 연작들의 이미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고 매 전시마다 다른 구성을 시도하기도 한다. 다양한 연작 중 2010년 이후에 작업한 연작들은 다음과 같다.
‘Story within a Story’(2010-11) 연작은 사진의 전통적 감성에 충실한 기법을 사용한다. 작가는 현실 공간에서 마주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감각을 사물을 통해 이야기한다. ‘Speaking of Now’(2012-2013)에서는 투병 중인 지인의 뒷모습과 그 주변 사물을 통해 작가가 느끼고 겪어 낸 삶과 죽음의 경험의 단상을 포착한다.
‘Language of Time(시간의 언어)’(2013-2014) 연작에서는 사라져 가는 공간인 폐허와 그 사물의 모습을 통해 생성과 성장, 그리고 또다시 소멸을 반복하는 순환의 고리를 사진으로 남겼다. ‘Elegant Town(우아한 도시)’(2016)는 국내 곳곳에 있는 신도시 속 인공적 환경을 촬영해 자연 이미지와 재조합한 연작이다.
‘Drifting‘(2019) 연작은 개성을 잃은 대단지 거주 공간이나 성당 등 사람들이 일정 시간 동안 머무는 장소의 주변부를 차분하게 담아낸 연작으로, 무분별한 개발로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대 도심의 모습을 포착했다. 그리고 ‘So, Suite'(2021) 연작은 25년된 사라질 위기에 놓인 호텔의 스위트룸의 모습을 담아낸다.
매일같이 새로운 시트와 새로운 투숙객으로 항상 제자리에서 리셋되는 공간이다. 최근에 작업한 ‘Nevertheless’(2021) 연작은 코로나 시대에 자연에 대한 시선을 담는다. 정상적이지 않은 낯선 현실을 겨울 동안 얼었다 녹으면서 죽어가는 식물이나 빛바랜 벚꽃의 이미지를 통해 포착한다.
정경자 작가는 갤러리 진선(서울, 2021), 갤러리 룩스(서울, 2016), 일우스페이스(서울, 2014) 등 다수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유아트스페이스(서울, 2018), 남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18),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서울, 2017) 동강사진박물관(영월, 2015), 대구예술발전소(대구, 2012), 중앙미술학원(베이징, 2007), 갤러리 베르클릭헤텐(스웨덴, 2007)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정경자 작가의 작품은 고은사진미술관(부산, 한국), 일우재단(서울,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천, 한국), 정부미술은행(과천, 한국)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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